▲드리니 어촌계원들이 어장에서 바지락을 채위하고 있다
신문웅
드르니의 옛말 '들온이'는 다리가 없던 시절 맞은편의 안면도에서 배를 타고 사람들이 계속 들어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강점기 '신온항'으로 바뀌었다가 2003년에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과거 경치가 아름답기로 손에 꼽히던 드르니항이지만, 안면연륙교가 만들어지면서 나루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어졌고, '비운의 지역'이 됐다.
이름이 독특해 한 번 들으면 확실하게 각인이 되지만, 바로 앞에 위치한 화려한 백사장항과 비교했을 때 사랑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이후 2013년 11월 백사장항과 드르니항을 잇는 250m 길이의 '대하랑꽃게랑' 해상 인도교가 건설되면서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됐다. 그 뒤 드르니항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리 위에서 보이는 주위의 풍광이 아름다운데다 바다 위를 걷는 신비함이 더해져 해상 인도교를 개통하자마자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부각됐다.
이어 태안해변길이 개설됐고 올해에는 그동안 지저분하던 드르니항을 아스콘으로 일제히 정비하고 주차장을 신설했다. 비로소 항으로써의 제 모습을 갖춘 드르니항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포구로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굴항포 운하가 역사적 흔적 남아
원래 이곳은 안면곶이었다. 옛날 삼남지방의 조곡을 운반하던 조곡선들이 풍랑을 만나면 쌀과 곡물 등이 많이 유실됐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겨 조곡선의 난파가 심했던 지역인 태안반도의 안면곶을 굴착 섬으로 만들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조선 인조 16년 (1638년)에 안면곶을 착항해 지금의 남면 신온리와 안면읍의 창기리 서북단의 판목 불탄개, 옛지명 굴항포(掘項浦)를 착항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