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읍에서 부남면을 향하는 길이다.
JTV <자전거로 고개를 오르다> 캡처
길이 있고 고개가 있으니 사람들의 발길이 있었을 법한 한티. 오가는 인적이 거의 없다. 길이라는 게 쓰임새가 다하고 나면 더 이상 길이 아닌 운명을 맞기도 할 것이다. 고즈넉한 한티를 그리 어렵지 않게 넘는 건 어제의 오버페이스에서의 반성 덕분이다. 길 뒤에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는 것이 도움이 될지 아닐지 모른다. 다만, 길에서의 페이스를 결정하는 건 자신이다. 자기의 체력과 마음가짐이다.
한티 넘어 부남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남은 길을 헤아려 봤다. 오늘도 여전히 야간 주행을 해야할 것 같다는 판단이다. 남은 거리 50여Km, 서둘러 행정구역이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으로 바뀌는 목사리재를 건넌다. 600 고지 전승탑이 있는 작고개가 있지만 이미 지나온 대고개나 한티 정도로 보였다. 큰 고비는 다 넘은 것 같다고 여기며 숨을 돌린다. 마지막의 배티재만 넘으면 어렵지 않게 마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작고개를 넘는다.
굽이치긴 했지만 완만했고 길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리막길에 나무가 만든 터널과 낙엽이 된 잎들이 깔려 누렇게 물든 아름다웠던 길을 신나게 내달린다. 고달픔과 피로가 죄다 사라진 기분이 들만큼 아름다운 기억이 머릿속 필름에 찍혀 저장된다.
지도를 면밀하게 살피지 못한 탓인지 이날의 고개 중에 경사가 가장 급한 서낭당이재에서 고생을 했다. 예기치 않은 상황의 조우가 더 힘들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사이 날이 어두워지고 추워졌다. 진산에서 다시 배티재로 넘기 위해 쉬는 동안 땀이 식는 통에 갈증과 추위가 더해져 지치게 만든다.
이미 어둑한 길을 달리기 위해 라이트를 켜고 오르는 길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이 여행이 시작되기 전에 가장 힘든 순간이 될 것이라고 여겼던 지점이긴 하다. 힘겹게 페달을 굴리고 길을 디뎌 걷는 것을 반복해 넘는다.
푸른 별 지구 위의 모든 사물을 지배해 그 자리에 머물게 하려는 중력과의 싸움은 길바닥을 경계로 치열하게 흔적을 만들어 낸다. 바퀴로부터 체인을 통해 페달로 전해진 중력은 발로부터 허벅지를 지나 심장을 통해 폭발된다. 내 몸속의 기관과 조직과 세포가 정교하게 연결되고 신호를 주고 받는다. 땅속으로 끌어당기는 중력과 나 사이에는 자전거가 있다. 그 겨루기의 중간에 서서 나와 중력간의 메시지를 정교하게 전달하는 전달자이다.
포기하고 쉬는 게 어때? 아냐 여기서 쉬면 더 힘들어질 거야. 자전거가 전하는 이런 메시지가 수없이 내게 전해진다. 지구와 내가 주고받는 신호의 통로가 된다.
'터질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갑돌의 말은 딱 적확한 순간의 한 마디였다. 그렇게 시간과 길 위에 남겨둔 흔적을 남겨두고 이날의 모든 여정이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