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1년동안 쌓인 문제들을 해결한 결과가 좋지 못한 등급의 고과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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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을 정리해 팀장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팀장님은 기존에 자재 관리를 담당하던 친구를 불러 어떻게 된 거냐고 닦달을 했다. 하지만 그 닦달은 시늉일 뿐 실질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전송망 공사 프로세스부터 예전에 팀이 분리되어 있을 때 팀장님과 함께 일하던 팀원들이 만든 프로세스가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인데 그 팀의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일은 공론화 되지 못한 채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으로 남게 됐다. 예전 같았으면 본부장님께라도 말씀을 드려서 조치를 받았겠지만 현재 본부장님은 예전 본부장님과 달리 팀장을 거치지 않고서는 일반 사원들과 말 섞는 것조차 싫어하는 스타일이었기에 평소에 소통을 할 일이 없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문제는 오롯이 내가 떠안게 됐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하나씩 정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은 협력업체 담당자들과 협의하여 정상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만들기 위해 월간 회의체를 구성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번 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사로 들어오는 것조차도 귀찮아하던 협력업체 담당자들이 시간이 갈수록 회의에 적극적이 되었고 본인들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협력업체 담당자분들과 긴밀한 공조체계를 통해 현장에 실제 재고 파악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 현장의 재고를 기준으로 전산 시스템상 허위 재고를 처리하고 모든 현황을 '제로썸'시킨 후 새로 잘 관리해보고자 하는 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에는 한가지 꼭 처리해야할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같은 팀내에 있는 공사 담당자들의 정산 프로세스 변경이었다.
공사 담당자들이 협력업체 공사대금을 정산할 때 자재 관련된 현황을 확인하고 자재 담당자의 확인을 받은 서류를 첨부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여러 명의 공사 담당자들이 신입사원이 담당하는 자재 업무에 대해 자기들 편한 방식으로 처리하고는 자재 담당자에게 '알아서 맞추라'는 식으로 계속 업무를 진행해왔다.
그 관행을 깨고 정상적인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했지만 입사 7년 차인 나에게도 그 공사 담당자들은 대부분 나보다 더 고참들이었고 프로세스를 쉽게 바꾸기엔 벅찼다. 예전 같았으면 팀장이나 본부장님의 힘을 빌려 옳은 방식이라면 밀어붙일 수 있었는데 지금 회사는 그런 분위기가 안 됐다. 특히 팀장님이 그들과 '한편'이라 더욱 힘들었다.
공사 담당자들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동시에 매달 재고조사를 시행해 펑크 난 자재 현황을 거짓 없이 금액으로 환산하여 정식 보고서를 올리기 시작했다. 결재라인은 담당, 팀장, 본부장으로 해당 현황을 공론화시켜달라는 팀장님에 대한 나의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쉽게 처리할 수 있었을 업무가 지금은 너무 힘들었다. 여러 조직이 통합되면서 '관리의 효율성'을 내세워 조직은 점점 더 수평구조에서 수직구조로 바뀌어 갔고 그로 인해 더욱더 '정치판'이 되어가고 있었기에 정상적인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안 됐다. 그 안에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인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를 했지만 '바보 같은 놈'이라는 피드백과 함께 '스트레스'가 나에게 돌아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1년을 노력했고 처음보다 훨씬 안정적인 프로세스와 더불어 전산 시스템 역시도 실제 현업과 함께 돌아갈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냈다. 1년이란 시간을 이전까지 쌓아놓은 '문제해결'에만 쏟아부은 것이다. 아직 처리되지 못한 문제가 남긴 했지만 이 부분은 위에서 '의사결정'을 해주어야만 가능한 문제였기에 내가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안 됐다.
나의 이런 업무 진행으로 인해 나와 같은 관리파트에 있는 팀원들은 나의 외로운 싸움을 응원해주기도 했지만 '적당히 살지, 왜 저렇게까지 하나...'라는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직접적으로 업무에 연관성이 높았던 '공사' 파트 담당자들은 나를 엄청 불편해했다. 그리고 들리는 이야기로는 공사파트 회의나 회식을 할 때 팀장님이 참석을 하는데 그 안에서 나의 욕도 많이 했다고 한다.
다시 기술 부서에 돌아오고 전쟁 같은 1년을 보냈다. 1년을 '남이 싸놓은 똥'을 치우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나에게 돌아온 건 안 좋은 고과 평가였다. 평가 면담 시간에 팀장님이 나에게 한 말은 '올해 처음으로 이 업무를 담당해서 그런지 업무 파악하는 데만 시간을 보냈고 특별한 성과는 없는 것 같다'였다. 어이없었다. 하지만 그간 우리 팀의 분위기를 보았을 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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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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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문제점을 파헤쳤더니... 돌아온 건 싸늘한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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