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수박밭이 침수된 모습.
<무한정보> 이재형
지구온난화로 이상기온의 정도가 심해지며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고 있어 농민들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농민들이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은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유일하다. 국가가 보험료의 80% 정도를 지원하고 농협(NH보험)이 운영하는 농작물재해보험은 민간보험이지만 사실상 정부가 농업재해를 보상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하지만 전국의 보험가입률이 18%대로 낮아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많은 농민들이 홍수, 태풍, 우박, 폭설 등 자연재해를 입으면 꼼짝없이 피해를 감수하고 심지어 파산지경에 이른다.
충남 예산군의 2017년도 농업재해보험 가입현황을 보면 보험가입률이 극히 저조함을 알 수 있다. 최근 게릴라성 집중호우와 돌풍이 빈번하게 발생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시설원예작물의 보험가입률은 전체 1782농가 중 93농가로 5.2%에 불과하다. 수도작(벼)은 795농가로, 전체 9205농가의 8.6% 수준이다. 과수쪽은 비교적 가입률이 높으나 아직도 많은 농민들이 보험을 외면하고 있다. 군내 배 농가의 가입률은 44%(501농가 중 221농가), 사과는 59.8%(978농가 중 585농가)다.
농민들이 농작물재해보험을 외면하는 이유는 보험혜택에 대한 낮은 만족도와 비싼 보험료 때문이다. 지난 7월 초 예산지역에 쏟아진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시설원예작물이 물폭탄을 맞았다. 오가 신원리와 신암 탄중리 일대 대규모 비닐하우스 단지 안에 있는 수박, 토마토, 멜론, 열무, 시금치 등 피땀 흘려 키운 작물들이 하루아침에 절딴이 나버렸다.
읍면사무소에서 피해조사를 한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이렇다 할 복구대책은 없고 피해는 모두 농민에게 떨어졌다.
일부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농민들은 기댈 곳이 생겨 한시름을 놓았다. 하지만 보험사에서 조사의뢰한 손해사정인들의 피해조사가 시작되고 보험금을 지급받기까지 한 달여 기간 동안 적잖은 속앓이를 했다.
보험금 지급 하세월지난 14일 충남 예산군 오가면 신원2리 민병도 이장과 이성호씨 그리고 예산읍 발연리 김기현씨 등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농민 여러 명을 만나 보험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았다.
우선 신속한 보험금 지급이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농민 입장에서는 발빠른 복구와 재파종을 준비하려면 당장 돈이 필요한데 보험금 지급이 한 달 이상 걸려 너무 늦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예상보험금의 50%라도 우선지급(가지급)을 요구했다.
피해작물조사 방식에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작물별 특성이 다른데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해 생육기간에 따른 보험금 지급액의 정도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보험회사가 객관적 기준이 아닌 주관적 잣대를 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멜론의 경우 어려운 일을 다 끝내고 수확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약간의 생육정도 차이에 따라 하우스 1동당 많게는 40만 원까지 피해보상금의 차이가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작물에 따라 침수영향력도 천차만별인데 이를 작물별로 적용하지 않고 있다. 수박밭의 경우 일부만 물이 차도 전체가 피해를 입어 완파로 봐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아도 땅 속 뿌리에 까지 물이 차면 수박이 모두 터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것만은 꼭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문제 중 하나는 '빈밭 보상(매몰 비용)'이다. 농민이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뒤 작물을 심기 위해 밭을 꾸미고, 모종을 사고,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밭이 침수되는 바람에 파종을 못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보상해야 한다는 게 농민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김기현(예산읍 발연리)씨는 보험에 가입하고도 밭에 작물이 없다는 이유로 보험 보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는 "멜론을 심으려고 밭을 꾸미고 모종을 구입하고 모든 준비를 끝내 내일 정식만 하면 되는데 물난리가 났다. 준비하는데만 수백만원이 들어갔는데 밭에 작물이 없으니 보험금도 없다고 한다"며 허탈해 했다.
얘기를 듣던 한 농민은 "다른 보험의 경우 사고로 인한 휴업보상금도 주는데…. 이거야말로 농민들을 깔보고 보험회사만 유리하게 만든 거"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자연재해에 할증이라니'할증제도'에 대해서도 농민들은 할 말이 많았다. 현행 농작물재해보험은 개인별 최대 30%까지 할증이 적용되고 지역별로도 재해가 많은 지역은 할증을 적용해 보험료율을 높게 책정하고 있다. 즉, 재해로 보험혜택을 많이 받은 개인과 그 지역은 보험료율을 높게 산정하는 것이다.
농민들은 "천재지변이 개인 노력으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개인에게 과실이 있는 것처럼 할증을 적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럴려면 무재해시 보험료의 일부를 환급해 줘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한 농민은 "자동차보험 등 다른 보험과 비교해 좋은 것은 적용하지 않고 나쁜 것만 갖다 붙였다. 참말로 고약하다"고 비판했다.
농작물재해보험은 1년 단위 소멸성이다. 한때 벼에 대해 무사고 환급특약제도를 실시했으나, 이마저도 논의없이 없앴다.
과수에 대한 보험혜택은 불만이 더 높다. 그러면서도 과수농민들은 한 번 재해를 입으면 재산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