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거나 알이 벌어진 포도를 먹고 있는 닭들. 매일 달걀을 훔쳐 오면서 건강한 달걀을 먹자는 나의 욕심으로 인해 달걀이라는 생명이 희생돼 죄스런 마음을 떨치기 힘들다.
김창엽
시골에 살긴 하지만, 언론을 통해 이번에 살충제 얘기를 접하기 전에는 닭장(혹은 닭)에 농약을 뿌릴 수도 있다는 점을 전혀 몰랐습니다. 농사랍시고 햇수로 9년째 짓고 있는데, 지금까지 닭 같은 가축은 물론, 이런저런 작물을 재배하는 밭에 살충제나 제초제를 제 손으로 뿌린 적은 단 한차례도 없습니다.
전쟁으로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여름철 풀과의 싸움에서 매번 패배하고, 풀에 대해 지독한 증오의 감정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제초제 같은 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제초제 또 살충제를 사용하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건 '귀연' 생활을 접기로 마음 굳혔을 때일 것입니다.
그러나 살충제 제초제 등 농약 사용의 '불가피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내 손에 피를 묻힐 수 없다는 것일 뿐, 독성 물질 없이는 현실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아니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단정한다면 다소의 과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농약 없이도 농사는 지을 수 있는데 한국인들, 아니 온 인류의 사고방식이 확 바뀌어야 가능할 거 같습니다.
까짓것 농약이 뭐길래?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농약 사용 전면 금지는 현대인들의 삶, 그 기저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어렵지 않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올해로 6년째 포도를 따 먹고 있습니다. 집 주차장 옆에 6그루를 심었는데, 제법 잘 자랍니다. 포도 송이도 얼핏 보면 주렁주렁 많이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번듯한 포도송이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벌레로부터 자유로운 포도송이가 없었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