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두륜산 대흥사 말사인 청신암입니다. 도형 스님 출타 중입니다. 어긋난 인연이었지요.
임현철
"스님과 연락 됐나?""어제 오늘 스님께서 전활 안 받네요.""출타 중이시면 둘이 산사 여행한 샘 치자고. 연이 그뿐인 것을…."해남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을 통과합니다. 부도전에서 허리 숙여 경배합니다. 부도전을 지나 반야교로 들기 직전, 오른쪽 오솔길로 접어듭니다. 지인, 주장자를 들고 걷는 폼이 아주 힘찹니다. 마음이 곧 부처인 게지요. 이삼 분 걸으니 곧바로 청신암(淸神菴)입니다. 암자라서 산 위로 한참 오르는 줄 알았습니다. 무더운 여름, 괜히 잔뜩 겁(?) 먹었네요.
청신암. 법당과 요사채를 겸한 'ㄷ'자 형태입니다. 기와지붕 위, 군데군데 잡초가 무성합니다. 문은 잠겨 있습니다. 스님은 계속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잠겨 있지 않은 방문을 열었더니 뜯지 않은 우편물 가득합니다. 누가 봐도 부재중이란 걸 눈치 챌 정돕니다. 하룻밤 청할 계획은 물 건너간 듯합니다.
"도형 스님, 아파서 병원에 가신 건 아니지?""저번에 뵈었을 땐 병원 다녀오시는 길이라 했는데….""생로병사의 고통을 누군들 피할 수 있을까!" "스님께서 건강할 때 얼굴 한 번 보자 하셨는데…."대흥사 앞 상가 주인장 등에게 도형 스님 안부를 여쭸습니다. 연기처럼 사라지셨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스님께선 진도 쌍계사에 계셨다고 합니다. 괜히 마음 조렸습니다. 암튼 노스님과 시절인연은 뒤로 미뤄야 했습니다. 그 허무함의 뒤끝일까. 지인은 손에 주장자를 든 채 터벅 걸음을 걸었습니다. 주장자의 주인에게 건네지 못한 허탈감이랄까. 삶이 그런 것을….
물맛 좋기로 소문난 일지암, '유천'과 인연도 어긋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