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 겨눈 총은 아이를 향했다.
평화를 품은 책
파란 물속에 붉은 피가 번져 나가고, 같이 놀던 아이들은 친구의 죽음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후다닥 숲으로 뛰쳐나갔다. 꼬마들은 벌벌 뛰면서 나무 뒤에 바짝 엎드렸고, 총소리는 몇 번 더 울렸다. 저 멀리 새날이가 떨어뜨린 운동화 한 짝이 놓여있었다.
"새날아, 나오지 마. 너 죽어."은비가 손바닥으로 입을 감싸며 한숨을 토해내듯 말했다. 장난감 BB탄 총에 맞아도 눈물이 줄줄 흐를 만큼 아픈데, 이번에는 진짜 총이 초등학생을 겨누고 있다. 그러나 책 속의 새날이는 은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새날이가 슬그머니 몰래 기어가 운동화를 집으려는데 멀리서 황동색 탄환이 날아왔다.
"타앙!"새날이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며, 다만 엄마의 울음소리만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믿을 수 없는 장면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던 아이들은 "헉!" 하고 신음을 뱉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새 운동화를 품고 캄캄한 땅속에 누워있던 새날이는 찔레꽃 향기에 깨어난다.
"운동화 비행기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어."새날이는 운동화 비행기를 타고 계엄군을 실은 트럭들이 장갑차를 앞세우고 줄줄이 도시로 진입하는 장면을 지켜본다. 트럭을 따라 쫓아간 광주는 전쟁터다. 며칠 전 새날이 몸속을 관통했던 총알이 시민들을 향해 꽂힌다. 총에 맞은 엄마 옆에서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아들은 울부짖고, 수많은 아이들의 울음이 온 도시에 메아리처럼 퍼져나간다.
"뭐지? 전쟁인가?"이유 없는 죽음이 당황스럽기는 열 살 먹은 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왜 갑자기 사람들이 총알을 맞고, 고아들이 생겨나는지 의아해했다. 설명을 길게 할 수 없었다. 37년이 지난 지금도 왜 선량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 돌이켜보면 울분이 차오르고 먹먹해지는데 10살 먹은 어린이들에게 그 모든 배경을 보여줄 수 없었었다. 일단, 계속해서 새날이의 운동화 비행기를 따라가기로 했다.
날이 밝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민주주의 만세' 현수막을 내건 시민들은 주먹밥을 나눠먹고, 다친 이들을 감싸 안으며 도시를 지켰다. 그 사람들 틈에는 엄마를 여의고 주저앉아 있던 꼬마도 섞여 있었다. 꼬마가 새날이를 향해 주먹밥을 건넸다.
"너는 내가 보이니? 피해야 해."새날이의 만류에도, 아이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웃으며 고무줄 새총을 꽉 쥔다. 새날이는 주변을 돌아본다. 위험을 알고도 물러서지 않았던, 용감하고 위대한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고 보듬는다. 그러는 사이 계엄군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그날 밤 자정 대검이 꽂힌 소총에서 일제히 불이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