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2021학년도 수능개편안 시안 관련 전과목 5등급 절대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능은 말 그대로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절대평가 방식의 '자격고사'로 남아야 하며,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변별력'을 수능에 요구해서는 곤란하다. 수능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수능으로 점수 경쟁 완화와 변별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마치 '증세 없는 복지'라는 구호처럼 애먼 국민들을 현혹시킬 뿐이다.
총리는 불공정하다고 나무랐지만, 91점짜리 아이가 100점 맞은 아이보다 열등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게 교육의 본령이다. 특정 분야에선 얼마든지 발군의 재능과 역량을 펼쳐 보일 수도 있다. 불공정의 대명사처럼 회자되고 있지만, 어떻든 학종이 수능의 보완책으로 대두된 것도 계량화된 점수로 아이들의 꿈과 재능을 파악해내기가 힘들다는 성찰 때문이다.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 교육 적폐의 정점엔 '대학'이 있다. 수능 개편을 고민하기에 앞서 대학 개혁과 학벌구조 타파라는 근본적인 대책이 제시됐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마치 수능체제만 손보면 공교육이 바로 설 것이라는 어설픈 인식은 '을'일 수밖에 없는 고등학교에 책임을 묻는 꼴이다. 자칫 1안과 2안 사이의 어처구니없는 갈등이 교육개혁의 열망과 대의조차 그르치게 될까 두렵다.
결국 총리가 제시한 타협안은 '속도 조절'이다. 곧, '방향은 맞지만 속도를 늦추라'는 것이다. 여론을 수렴해 확정하겠다고 해놓고는 공청회를 열기도 전에 실무자들에게 지시를 내린 셈이 됐다. 대놓고 1안으로 가야 한다고 의중을 밝힌 것이다. 올바른 방향이라면 국민들을 설득할 대안 마련에 집중해야지,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는 건 개혁의 동력만 약화시킬 뿐이다.
'어정쩡한 눈치 보기 개편안'... 현직교사들의 평가'죽도 밥도 아닌, 어정쩡한 눈치 보기 개편안'이라는 게 지금껏 만나본 현직 교사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누구에게도 욕 먹기 싫다며 좌고우면하다가는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 동료교사는 이번 수능 개편 시안을 두고, "교육 문제를 해결한 방안이 없어서가 아니라 개혁해내려는 의지가 박약해서"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당장 문과와 이과의 구분을 없애겠다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부터 훼손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과정과 수능 개편안이 따로 논다는 지적이다. 현재도 문과와 이과는 대학입시를 위해 편의상 나눠 운영하는 것일 뿐더러 아이들은 수학의 가형과 나형 선택의 차이로 둘을 구분하는 게 현실이다. 문과를 선택한 아이의 십중팔구는 수학공부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물며 1안의 경우 수학영역에선 절대평가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으니, 문과와 이과의 실질적 통합은 이미 물 건너 간 셈이다. 절대평가를 적용한다고는 하지만, 엄연한 수능과목인 통합사회와 통합과학까지 느닷없이 공부해야 하는 마당이니 아이들의 학습 부담만 늘어난 꼴이 됐다. 듣자니까, 이미 사교육업계는 이 두 '블루오션'을 개척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요컨대, 수능 전 과목의 절대평가 도입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일 뿐이다. 갈 길 바쁜 지금 5개냐 8개냐 따져가며 과목 수를 가지고 핏대 올리며 다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전가의 보도처럼 '변별력'만 부르대는 대학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학벌구조에 기대어 아이들을 일렬로 줄을 세워 뽑기 위해 혈안이 된 그들의 주장에 휘둘릴 텐가.
"어른들이 싼 X, 우리가 치우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