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리퀘스트우리나라 대표 공익 모금방송 ‘사랑의 리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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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내는 2001년 11월 말 만성골수성백혈병 가속기 진단을 받았다. 때마침 치료효과가 뛰어난 세계 최초의 표적항암제인 '글리벡'이 우리나라에서도 시판되어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평생 먹어야 할 '글리벡'의 한 달 약값은 450만 원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액에 부담이 컸지만 아내의 질병 악화로 인도주의 차원에서 시행된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내는 10개월 동안 무상으로 '글리벡'을 복용할 수 있었다. 2002년 10월에는 조혈모세포(골수)이식까지 받아서 현재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아내의 투병을 지켜보며 변화된 일상 가운데 하나는 매주 토요일 오후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면서 전화 한통으로 2000원을 기부할 수 있는 060-700-0600 ARS 전화를 누르는 것이었다.
한때 저소득층 환자들의 생명줄이었던 <사랑의 리퀘스트> 아내의 백혈병 진단과 글리벡 치료는 내가 2005년 11월부터 한국백혈병환우회에서 상근자로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항암치료나 조혈모세포(골수)이식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절망하고 있는 저소득층 백혈병 환자들과 상담하고, 이들이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 2000만 원, 출연하지 않고 자막만 나오면 1000만 원을 치료비로 지원해 주는 <사랑의 리퀘스트>와 연결시켜 주는 것이었다.
백혈병 환자의 사연을 구구절절 정리해 <사랑의 리퀘스트> 작가에게 보내고 간곡히 부탁했는데도 결국 선정이 되지 않아 그 결과를 해당 환자에게 전달할 때의 그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2000만 원의 치료비 지원을 받아야 은행 대출 받고, 집 팔아 월세로 옮겨 당시 백혈병 치료비인 5000만 원에서 1억 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00만 원의 치료비 지원을 못 받으면 저소득층 백혈병 환자는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랑의 리퀘스트>에 출연한 백혈병 환자들이 하나둘씩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ARS 전화를 걸어 2000원씩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다보니 출연자의 가슴 아픈 사연에 초점을 두고 방송되는 경향이 있었다. 치료가 끝난 백혈병 환자가 나중에 방송을 본 후 자존감에 심각한 상처를 입거나 지인으로부터 불편한 동정이나 거부감을 경험하면서 <사랑의 리퀘스트> 출연 자체를 후회하는 경우가 생겼다.
이때부터 백혈병 환자의 프라이버시와 인권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었고, <사랑의 리퀘스트> 방송 출연 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도 백혈병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해 주었다. 안타까운 측면만 강조하기 보다는 나중에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는 긍정적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방송을 만들어 달라고 방송 작가에게 부탁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사랑의 리퀘스트> 방송 1회 평균 모금액인 1억 원을 연간으로 계산한 금액인 52억 원의 재원만 있으면 <사랑의 리퀘스트>는 종영되어도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리퀘스트>가 어려운 이웃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저소득층 환자들에게 필요한 치료비를 지원해 준 대표적인 공익 모금방송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연간 52억 원의 재원만 있으면 환자들이 가슴 아픈 사연을 공개하지 않고도 생활비, 교육비, 의료비 지원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비급여제도 도입과 3대 비급여 해소가 핵심인 '문재인 케어'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한 대학병원을 찾아 환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선 공약이었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하였다.
예비급여제도 도입을 통해 미용·성형을 제외한 일체의 의학적 비급여를 전면적으로 건강보험 급여화하고, 의료비 폭탄의 상징이었던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를 전면 폐지하거나 단계적으로 건강보험 급여화하는 방식으로 올해부터 2022년까지 30.6조 원의 재정을 투입해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높이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일명, '문재인 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