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검색 트렌드를 보면, 4차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지난 4-6월에 크게 올랐다가 이후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인규
어쩌면 '4차산업혁명 장사' 선봉에 섰던 보수언론의 배신이 얄미울지도 모르겠다. '4차산업혁명'으로 야심차게 수업을 개설 중인 대학이나, 이 주제로 책을 써서 '대박'을 터뜨려보려는 열망을 지닌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라고 말하고 싶다. 이미 잔치는 끝났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이 '4차산업혁명'과 별 관계도 없는 고든의 책을 소개하며 '4차산업 혁명은 허구다'를 외치는 것을, 나는 일종의 면피 행위로 본다. 눈치 빠른 상업언론이 이미 '파장' 분위기를 간파한 것이다. 앞으로도 얼마간 '4차산업혁명'을 우려먹겠지만, 목소리를 서서히 줄여가다가 나중에 언제 그랬냐는 듯 딴청을 피울 것이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로버트 고든도 아니고, 그의 책을 열심히 소개하고 있는 보수언론도 아니다. 검색 트렌드가 말해주듯, '4차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은 대선이 있던 5월에 정점을 찍은 뒤 꺼져가고 있는 중이다. 뭔가 요란하기는 했으나, 실속이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달은 것이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인류역사에서 늘 되풀이되어 온 헛소동의 재탕일 뿐이니까. 라디오가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화성인과 교신할 수 있게 됐다'고 흥분했고,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때는 '마법의 구슬이 탄생했다'고 열광했다.
인터넷이 일상화되기 시작했을 때는 "이제 '민족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마당에, 국경이나 내-외국인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것도 기술 문외한의 주장이 아니라,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의 창설자이자 초대 소장이었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의 확신에 찬 예견이었다.
이런 허풍이 되풀이되는 것은 사람의 기억력이 짧은 탓이겠지만, 망각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매번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도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게 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전문가'들의 왜곡이 다수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는다면, 이들에게 수치심을 깨닫게 해 줄 필요가 있다.
파장 분위기 '4차산업혁명론', 그래도 글 쓰는 이유4차산업혁명론의 '조기 파장' 분위기로인해, 올 초부터 4차산업혁명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글을 연재해 온 나로서는 조금 '김 새는' 상황이 되었다. 4차산업혁명의 열기가 뜨거워야 적극적인 반론도 쏟아지고, 토론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글을 계속 쓰려고 한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입체프린팅, 공유경제 등의 기술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거나 새 경제성장의 동력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신기술이 무의미하거나 아무런 사회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 기술들은 유용하기도 하지만, 심각한 사회적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만일 기술의 진행 방향을 시민사회가 주도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대다수의 삶에 큰 해악을 끼칠 것이다. 미래형으로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시간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온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에서 '4차산업혁명론 전도사'로 활약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한국에 4차산업혁명이 보이지 않는다'고 위기감을 높이면서, '우리도 빨리 뭔가 해야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빨리 하자'면서도 구체적으로 뭘 해야하는지는 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신기술이 가져 올 폐해, 예컨대 고용불안, 저임금, 실업 등에 대해서는 아주 손쉬운 답변을 내놓는다. '로봇세를 걷으면 된다'는 것이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실업이 발생할 때 세금을 물려 실직자의 생활보조를 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외계인이 아닌가 싶다. 알다시피, 한국은 지금 법인세를 인상하는 문제를 두고 각계가 치고 받으며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25%에서 22%로 낮춘 법인세를 원래대로 복귀 시키는 법안 하나를 두고도 재계와 보수언론에서 '세금 폭탄'이니 '경제파탄'이니 난리법석을 떠는 판이다.
이런 재계와 보수언론이 왜 '로봇세'에는 거품을 물지 않을까? 공상과학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공허한 이야기는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불편해 하지 않는다.
'로봇세' 말하는 이들에게 묻는다사람들은 '로봇' 하면 공상과학 영화에서 본 이미지를 떠올린다. 모습이나 행동이 인간을 닮은 기계 '안드로이드(android)'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고, 앞으로도 빼앗아 갈 것은 이런 상상 속의 기계가 아니다.
현재 한국의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을 대량으로 해고하는 것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경비로봇'이 등장해서인가?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경비원 모자를 쓰고 단지를 누비는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스마트 보안 시스템'이라는 장치다. '로봇세'를 주장해 온 전문가들에게 묻고 싶다. 스마트 보안 시스템에 '로봇세'를 물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