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공수,건설노동자의날품<32.5공수, 건설노동자의 날품>, 2012, 단편다큐멘터리, 유최늘샘
최늘샘
내 나름의 구도(求道)여행이요 탁발(托鉢)여행이었던 '천축국'(天竺國, 중국에서 인도를 부르던 옛말) 여행을 다녀온 뒤, 다시 별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반지하를 벗어났다. 그러나 서울에서 2500만 원으로 구할 수 있는 반지하가 아닌 전셋방은, 옥탑방 밖에 없었다.
"반지하방에서 옥탑방까지 오는데 10년이 걸렸네."
"다 큰 오누이가 단칸방 쓰는 것도 힘들고, 할만큼 했으니, 다음 번에는 방 두 칸짜리 집으로 가든지 각자 집을 구할 방법을 찾자, 부디..." 이사하던 날 동생과 나는 그런 말들을 하며 웃었고, 또 슬펐다.
만리동 옥탑방에서 네 번째 여름을 나는 중이다. 옥탑방은 무척 덥고, 비가 좀 새고, 혹한기엔 보일러가 얼지만 곰팡이가 많이 스는 반지하방보다는 낫다. 열악해도 지금의 나에게는 이곳이 최선이다.
좋아서 이곳에 사는 것이 아니다. 벗어날 수 없어서 참는 것이다. 취약한 주거지에 산다는 1인가구 중 40퍼센트의 다른 청년들에게도, 각각의 작은 방들은 소중하고 절실한 최선의 공간일 것이다. 또한 그곳은 언젠가는 반드시 벗어나고 싶은 슬픔의 공간이며 행복이 유보된, 가난의 굴레일 것이다.
주거협동조합에 사는 동료의 말대로, 열악한 주거지들이 개선되고 언젠가는 없어지길 바란다. 튼튼하고 아늑한, '살 만한' 공간에서 사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해방'의 날이 올 수 있을까.
만리재로를 따라 서울역 주변을 지날 때마다 수많은 노숙인들을 마주친다. '사람중심 도시재생 - 서울로7017'라는 이름으로 2017년 5월 20일 서울역고가가 공원화되었지만 서울역 노숙인들의 삶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안타깝고 슬프고, 사회의 빈부격차에 분노를 느낀다.
한편으로 나에게는 비와 위험을 막아줄 지붕과 벽이, 작으나마 나만의 공간이 있음이 감사하다. 타인의 불행과 아픔의 상황을 보고 일말의 안도감을 느끼는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서울역은 '사람중심' 공간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사회의 균열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집이 없는 노숙인들이 튼튼하고 아늑한, 살 만한 공간에서 잠들고,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다.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헌법은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제35조 3항)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해 발표된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적합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제25조 1항)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헌법과 선언이 문장과 구호로 그치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옥탑방의 열기를 참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