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광화 열사마전 팔로군 총부 기념관에 전시된 진광화 열사 사진과 간단한 소개. 그 아래는 조선의용군을 추모하기 위하여 마전에 찾아온 한국인 인사들의 사진도 전시되어있다.
박청용
스스로 일어선 조선의용군또한 1944년 6월 하순 좌권현에서 있는 조선독립동맹 조선사병대표 대회에 참여한 조선의용군들의 사진도 있었다. '사병대표회의'가 있었다는 것은 조선의용군이 위로부터 아래로의 상명하복의 조직이 아니라 사병들이 주도가 되는 민주적인 군대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서 강제적으로 모인 군대가 아니었다. 자발적으로 자기 스스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자기들 스스로 조직한 민간의 군대였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군대이었기에 스스로 무기를 보급하고 스스로 농사하고 자력으로 움직이는 군대였으니 그들이 고단함이 느껴졌다. 이들에게 군사학적인 명칭을 붙이면 항일 빨치산(Partizan)이었던 것이다. 빨치산! 이 단어가 빨갱이로 변질되고 빨갱이라면 경악하고 뒤집어지는 한국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빨치산처럼 위대한 단어가 또 어디 있는가? 스스로 일어나서 외적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되찾고자 일어난 민간의 자발적 군대가 빨치산이 아닌가? 임진왜란 때에 임금과 관군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했을 때에 백성들 스스로 일어나서 왜병과 싸웠던 의병이 빨치산이요, 나치의 점령에 저항했던 프랑스 민간인 레지탕스도 빨치산이다.
빨갱이라는 변질된 이념의 덧칠이 되지 않았더라면 빨치산은 참으로 좋은 단어였을 것이다. 이제는 동무, 인민, 수령이라는 단어와 함께 금기시 되는 언어가 되었으니 이념으로 편을 갈라서 언어마저 변질시키는 치졸한 싸움이 한심스럽기만 하다. 6.25 이전에는 동무나 인민이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는 친숙한 단어였고 수령은 조선시대에 각 고을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였는데 지금은 그런 단어를 쓰면 안 되는 꽉 막힌 분단의 절벽 시대를 살고 있다.
사진 속의 조선의용군들은 그런대로 군복을 입고 총도 메었는데 대부분 앳된 청년들이었다.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분들이 많았고 간혹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분들도 있다.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들이 남긴 조국독립을 위한 헌신과 수고를 누가 알아주고 있는가? 뜻있는 개개인이나 단체만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선의용군에 대한 추모와 이들이 남긴 역사적인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고 기려야 할 것이다.
구름도 고개를 숙이는 운두저촌(雲頭底村) 마전의 팔로군 기념관에서 4-5km 정도 떨어진 운두저촌으로 택시는 달렸다. 여행을 계획할 때에 대중교통으로 와서 마전 팔로군 기념관에서 운두저촌까지 걸어서 갈까 했었다. 막상 현장에 와보니 걷기에는 너무 멀고 내리 쪼이는 뜨거운 태양빛에 걸어서 갔으면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다.
비용은 좀 들었어도 택시를 대절한 것이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자족하면서 다리도 건너고 마을들을 지나쳤다. '구름도 머리를 아래로 숙인다'는 운두저촌(雲頭底村)이라는 마을 이름이 말해 주듯이 높은 태항산맥 아래 위치한 마을이었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평지에는 농사할 수 있는 곳으로 주민들이 농사일을 하는 모습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