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재성당 내부. 중앙에 판벽을 세워 남녀 자리를 분리하였다. 이것은 남녀칠세부동석과 남녀유별의 유교 예법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전통을 수용하며 복음을 전하기 위한 노력이다.
손안나
익산 두동교회와 김제 금산교회는 'ㄱ'자형 교회이다. 조선의 국시인 유교는 남녀유별과 장유유서의 신분질서를 인정하였다. 초기 기독교회는 이 예법을 지키면서 예배드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얻은 결론이 'ㄱ'자형 교회였다. 한옥 건물 두 동이 'ㄱ'자로 연결되어 한쪽에서는 남성이 다른 쪽에서는 여성이 예배드릴 수 있는 구조이다. 두동교회나 금산교회는 모두 'ㄱ'자형 교회이지만 각각 특별한 이야기들이 남아있는 교회이기에 의미가 있다.
두동교회는 각각 10평 정도의 한옥 두동이 만나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었다는 의미로 두동교회라 불렀다. 두동교회는 1929년 세워진 교회로 'ㄱ'자형 접점에 세워진 강당은 남자 석이나 여자 석에서 모두 볼 수 있지만 남자 석에서는 여자 석을, 여자 석에서는 남자 석을 볼 수 없는 구조이다. 이는 남녀칠세부동석과 남녀유별이라는 유교적 통념에 배치되지 않으면서 남녀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노력이다. 유교 이념에 따라 여성과 남성의 공간을 분리하였지만 여성에게도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남녀평등이라는 기독교의 기본 정신이 발현된 결과이다.
금산교회 역시 'ㄱ'자형 교회이다. 두동교회가 함석지붕 교회이고 금산교회는 기와지붕 교회이다. 금산교회는 남북방향의 건물은 5칸으로 남자들의 예배공간이고 동쪽의 건물은 2칸이고 여자들의 예배 공간이다. 같은 규모의 두 채의 한옥을 연결한 두동교회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1908년 선교사 데이트(Lews Boyd Tate)가 지었다. 한국의 전통적 건축양식과 서양 교회의 특징이 어우러진 교회로 우리나라 처음 교회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교회는 건축물만 아니라 머슴 목사님을 극진히 섬긴 주인 장로님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의 이야기이다.
이자익 목사는 6살 때 부모를 여의고 떠돌이 생활을 하였는데 그를 불쌍히 여기고 집에 받아들인 이가 조덕삼 장로이다. 어린 이자익은 총명하여 어깨너머로 천자문을 배웠고 그의 총명함을 알게 된 조장로는 당신 아들과 같이 교육을 받게 한다. 조덕삼 장로의 집에서 교회가 시작되면서 이자익도 신앙을 받아들였고 둘은 같이 교회를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머슴이며 마부인 이자익이 먼저 장로로 선출되었고 주인인 조덕삼은 장로 이자익을 도와 교회를 이끌었다. 또한 이자익이 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한 이도 조덕삼 장로이다. 이자익이 목사 안수를 받고 금산교회에 2대 목사로 취임할 수 있었던 것도 조덕삼 장로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건물의 아름다움과 역사적 가치를 뛰어넘는 감동과 겸손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한다.
되재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으로 지어진 성당이고 약현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지만 한강 이남에서는 최초의 성당이다. 교통이 발달한 지금도 완주군 화산면은 깊은 산골이다. 이토록 외진 곳에 의미 있는 성당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성당이 지어질 만큼 신도가 많았다는 사실도 놀랍다. 이 깊은 산 속에 이렇게 많은 신도들이 살았던 이유는 박해를 피해서 산골에 은거하며 신앙촌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대둔산과 천호산 주변에 약 55개 정도의 교우 촌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교우들이 모여 살다보니 박해 때마다 순교자를 내었고 이들의 순교지와 무덤은 성지가 되었다. 천호성지이다. 이곳 되재성당에서 천호성지까지의 거리는 17km이다.
숱한 박해 끝에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면서 1895년 마침내 성당이 건축된다. 이 성당은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타 버렸고 1958년 본당은 고산으로 옮겨가고 이곳엔 공소건물이 지어졌다. 2004년에는 전라북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2006년 기존의 공소 건물을 해체하고 2009년 한옥성당을 복원하였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건물은 2009년에 복원된 건물이다. 1958년에 지어졌던 슬라브의 공소건물이 남아 있었다면 미래유산인데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