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독일인 기자가 광주항쟁 당시를 취재하는 장면이다
쇼박스
딸, 같이 영화 <택시운전사>를 같이 봐서 참 좋았어. 엄마는 영화 보는 내내 웃다가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래서 가볍게 가슴을 주먹으로 퉁퉁 치면서 입술을 깨물기도 했지. 스무살이 된 딸은 어떤 느낌으로 이 영화를 봤을까?
엄마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80년, 당시 뭔가 잘못된 일이 일어나는 걸 알고는 있었단다. 너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밖에선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들을, 뿌리가 없는 바람이 전해주는 이야기처럼 들었단다. 물론 TV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었지.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당신들은 참 못마땅해 하셨지. 그 때 엄마는 어렸으니까 '그저 TV랑은 뭔가 많이 다른 거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단다.
대학에 입학해 오리엔테이션이라는 걸 하는데, 대학 캠퍼스에서 관을 앞세우고 추모하는 몇몇 학생들을 보았지. 1987년 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항의하는 행렬이었어. 학교 밖 세상이라고는 재수 학원밖에 모르던 엄마로서는 큰 충격이었단다. 더 놀라운 건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였어. '왜 지나치치지? 잘못된 거 맞잖아? 내 또래 학생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왜 같이 슬퍼하지 않는거지?' 그리고 알게된 논 픽션(Non Fiction)의 광주.
어쩌다가 보니 엄마의 대학 생활은 그 고민과 함께 시작되었네. 다 지나간 이야기니까 최루탄이 얼마나 매캐한지, 지랄탄이 얼마나 지랄같은지, 몰로토프 칵테일(화염병)의 황금비율은 어떤지, 페인트를 지우느라 신나를 핸드크림처럼 썼던 그 시절 이야기는 그냥 접을게.
하지만 딸, 오늘 엄마는 이 영화를 보면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단다. 영화는 2003년 독일 기자가 언론상을 받는 걸로 마무리를 하지. 택시운전사 김만섭은 그 기사를 신문으로 접하면서 영화에서 마지막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를 묻자 손님은 "광화문 갑시다"라고 대답을 한단다. 그 마지막 대사가 감독의 의도였든 혹은 아니든, 어쨌든 무거운 무게로 엄마의 가슴에 콱 박히는구나.
영화가, 문학이, 미술이 광주를 이야기하고, 기록하고,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지만 그래도 우리가 꼭 마무리 해야만 하는 일, 그것은 '역사에 대한 소환장'이라는 생각을 했단다. 독일이 유태인 학살범과 전쟁을 일으킨 자들에게 어떻게 끝까지 책임을 물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고 자란 세대니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어.
딸이 재수를 하는 동안 일주일 내내 설거지를 하고 엄마에게 요구한 용돈이 단 돈 만원이지.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말이야. 엄마도 사주고 싶고, 맛있는 거 많이 해주고 싶지만, 스스로 참아내며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법을 배워가는 딸을 그냥 대견스럽게 지켜만 보고 있단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화가 나는 건, 나라를 팔아 부를 누린 그들의 자손들이 대를 이어 국회의원을 하고 있고, 잠시 대통령 '코스프레'를 한 누구는 교도소 문턱에 부딪힌 발가락이 부었다고 MRI 촬영을 하고, 10살도 채 안된 어린 아이는 단지 할아버지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몇백 억의 주식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상속받고,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인상된 것을 두고 '규정속도를 한참이나 위반했다'고 떠드는 자들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