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ramatic Punk] 책표지.
혜윰
3세부터 바이올린을 시작, 8세에 줄리아드 음악대학에 예비입학 자격이 주어질 정도로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전액 장학금으로 줄리아드 음악대학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요.
10세 때 웨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시작으로 링컨 센터나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홀과 같은 곳에서 협연하거나, 세계 최고의 재즈뮤지션과의 수많은 협연을 하는 등, 10대에 이미 음악적 천재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런 그가 한국에서 데뷔한 것은 줄리아드 음악대학교를 졸업한 1996년 12월 KBS-<열린 음악회>에 출연하면서에요. 이듬해인 1997년 1집 앨범 <The Bridge>를 발표, 활발한 뮤지션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지난날 한때 '대한민국이 낳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뜨거운 화제 속에 있었던 유진 박 이야기입니다.
유진 박이 데뷔하던 무렵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바이올린은 '서정적인 곡에 걸맞는, 애잔한 선율의 악기'였습니다. 이와 같은 고정관념을 깨뜨린 것은 그가 연주하는 '일렉트릭 바이올린'의 화려하고 힘찬 선율. 그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악기랄 수 있는 일렉트릭 바이올린으로 클래식은 물론, 재즈, 록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하고 힘찬 연주를 하는 열정적인 연주자로 일약 스타가 됐습니다.
1집 앨범이 백만 장이나 팔렸고, 드라마나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볼 수 있는, 광고로도 볼 수 있는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축하공연(1998년)에서 연주하기도 했고,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에서 협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외에도 국내 수많은 대규모 행사들과 콘서트에서 주요 연주자로 활동하는 주요 인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지기 시작, 잊히고 맙니다. 이런 그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여름. 몇몇 네티즌들에 의해 그의 소식이 알려져 수많은 사람들을 충격과 안타까움에 빠지게 했는데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지방의 소규모 행사나 무료 행사장, 유흥업소 등에서 연주하는 유진 박의 모습들이 목격된 것입니다.
심지어는 곱창집이나 삼겹살집에서 공연하는 모습까지 목격되기도 했다는데요. 게다가 연주 실력도 형편없고, 상대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듯 보이는 모습을 담은 영상까지 공개되어 많은 사람들을 더욱 충격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후 진실 규명과 유진 박 구명을 위한 네티즌들의 다양한 노력과 활동에 언론까지 가세, 나아가 소속사 대표를 수사하기에까지 이릅니다. 그런데 와중에 피해 당사자인 유진 박이 그의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고 말아 사람들로부터 아예 멀어지고 맙니다.
'잠시 날개를 접어 둔 천재 뮤지션의 이야기'란 부제의 <드라마틱 펑크>(Dramatic Punk, 혜윰 펴냄)는 지난날 이와 같은 불행한 우여곡절을 겪은 후 올해 20주년 콘서트(유진 박, 하고 싶은 이야기…. 2017.1.19.~22일)를 가진 유진 박이 쓴 자신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