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는 나와 아이.
MBC
부모들은 부모모임에서 3년 동안 애쓴 것만큼 공중파 시사프로 한번 나가는 것이 큰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부모님들의 3년 시간이 거름 되어 이렇게 방송을 통해 사람들 앞에 퀴어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과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감에 마음에 울컥했다.
그리고 <피디수첩>이 방송되었을 때, 성소수자와 그 가족들 모두 카메라가 비추고 있어도 거리낌 없이 밝고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너무 기뻤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도 방송에 공개되어도 괜찮다고 할 만큼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간 가졌던 엄마에 대한 불만을 카메라에 대고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고 참 다행이다 싶었다(이 기회에 그간 세심하지 못해 상처 줬던 엄마의 부족함을 싸게 퉁~친다는 맘으로!).
물론 방영되고 나서 어떤 후폭풍이 있을지 가늠하기 힘든 불안함도 있었지만... 그런 저런 걸 다 고민하면 세상일 아무것도 못 한다는 평소의 지론대로 뭐든지 하고 나서 후회하기로 했다. 안 하고 생기는 후회는 영원히 숙제로 남겠지만 하고 나서 생기는 후회는 적어도 해결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실제로 아이의 반응을 보니 그 걱정은 괜한 걱정이었나 싶다.
아이에게 방송 후 혹시 누가 비난의 말을 던지면 '알아듣지도 못할 멍충이'들하고 싸우지 말고 "당신 같은 사람도 이해하도록 우리가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힘드시겠어요~ 어쨌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 혐오는 사양하겠어요^^"라는 식으로 에너지 아끼는 게 어떠냐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이는 "ㅋㅋ~ 그냥 조용히 살래"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나보다 더 덤덤한 반응이었다. '오픈 퀴어'로서의 삶을 작정하고 나니 더 담대해진 것 같았다.
나 역시도, 방송 후 <피디수첩> 게시판에 혐오발언이 난무할 때 걱정되기보다는, '이슈화되어 다행이고 더 크게 논란이 되었어도 괜찮을 텐데...?' 하는 여유가 슬금슬금 생긴다. 거기다 퀴어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열려 있는 삶의 방식에 비해 혐오하며 사는 그 사람들의 방식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안타까움도 생겼다. 세상사는 게 힘든 건 다른 사람 때문일 때보다 자기의 내면에서 생기는 모순과 분열 때문일 때가 많지 않은가.
"이해·지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능동적인 행동으로 같이할게"장애나 얼굴색을 이유로 혐오하는 게 옳지 않다는 건 알면서 퀴어는 왜?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저 사람들 머릿속은 얼마나 갑갑할까. 무지와 혐오는, 하는 사람이 더 괴로운 것이고 (안타깝지만) 괴로움은 그들의 몫이다. 차별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우리는 옳으니까 당당하게 부모가 나서고 차별을 당연하다 주장하는 저들의 천박함엔 자식들도 부끄러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빛이 어둠을 이긴다고 확신한다.
어떤 차별이든 다른 이에 대한 차별을 용인하면 나에 대한 차별도 용인될 것이다. 법적인 차별금지와 이후의 사회적 편견에서 언제 자유로워질지 장담할 수 없으나 적어도 머지않은 시기에 그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닭이 울어서 새벽이 오는 게 아니라 새벽이 다가오니까 닭이 울 듯이 마땅하고 옳은 것에 대한 우리의 노력이 때가 되니 이슈로 드러나는 것이다. 날이 밝기 직전 가장 어둡듯이 사회적 논란이 강하면 강할수록 해결을 위한 시간이 가까워 오는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