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 반대 할머니들이 한전 측 재원으로 지은 새 복지회관을 거부하며 머무르던 천막 농성장.
김성욱
"할매들이 어제 밤에 불안해서 잠도 잘 못 주무시더라구요. 혹시라도 이장이나 마을 사람들이 해코지할까봐..."지난 1일 오후 1시 30분,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에서 마을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송전탑 건설을 반대해온 몇몇 할머니들은 회의 참석을 주저했다.
"가면 또 무슨 상처를 받을라고..."(최계향 할머니)이날 마을 회의 안건은 송전탑을 반대하는 할머니들이 경로회관을 쓰게 할지 여부였다. 하루 전날인 7월 31일 오전 6시, 반대 측 할머니들은 송전탑 건설에 찬성한 마을 이장과 다수 주민들이 걸어놓은 자물쇠를 절단기로 끊고 경로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경로회관이 잠긴 지 5개월여만의 일이었다.
"아이고, 39도까지 올라가는데 그 시꺼먼 천막에서 더 살 수가 있어야지."(조봉연 할머니)지난 2월 삼평1리에는 새 복지회관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송전탑 반대 측 이병옥(79)·이억조(81)·이외생(82)·조봉연(82)·최계향(78)·최남이(81) 여섯 할머니는 새 회관 이용을 거부했다. 그곳은 송전탑 건설 협상에 따른 한국전력공사(한전)의 마을발전기금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복지회관 앞에 세워진 비석에는 '한국전력공사 오억원'이라고 떡하니 새겨져 있다.
할머니들은 한전과 송전탑이 마을을 갈라놓기 전 주민들이 즐겨찾던 낡은 경로회관을 고집했다. 여섯 중 다섯이 독거노인인 할머니들은 경로회관에 모여 함께 밥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생활해왔다. 삼평1리 주민들에게 경로회관은 도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시골의 정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송전탑이 들어오기 전에는.
삼평1리 주민들의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은 2009년부터 본격 시작됐다. 일반 가정집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논밭과 과수원을 가로지르는 송전탑을 반길 주민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한전과의 싸움이 길어지면서 주민들이 하나둘 이탈했고, 현재 남은 반대 주민은 여섯 할머니를 비롯한 13명뿐이었다. 송전탑 건설 반대를 외치다 경찰과 용역들로부터 갖은 수모를 겪은 여섯 할머니는 한전의 재원으로 건설된 새 복지회관이 "수모"라고 했다(관련기사 :
34만 볼트 '벼락' 맞은 할머니..."개 끌듯 끌고와").
할머니들의 반대에도 지난 2014년 7월 21일 경찰병력 500여 명이 투입된 행정대집행으로 23호기 공사가 재개되면서 삼평1리를 둘러싼 송전탑 8기는 그 해 연말 모두 완공됐다. 이후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송전탑을 둘러싼 분란은 여전히 주민들 사이에 남아있었다.
"우리들요. 목숨 걸고 싸웠잖아요. 경찰이랑 (용역)깡패들한테 맞고 질질 끌려가면서... 그렇게 싸우고 저 한전 쪽에서 나온 돈으로 (새 복지회관을)지었으니 우리가 거길 어떻게 들어갑니까. 우리도 자존심이란 게 있지 않겠어요."(이억조 할머니)하지만 이장을 중심으로 한 찬성 측 주민들은 기존 경로회관을 폐쇄했다. 새 복지회관이 있는데 이전 회관까지 관리하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반대 측 할머니들은 지난 2월부터 노상에 비닐 천막을 치고 생활해왔다.
할머니들의 천막과 새 복지회관은 2차선 차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불과 50m 떨어진 거리에서 삼평1리 주민들의 감정의 골은 깊어갔다.
"늙은이들이 너무 힘들어요. 그냥 하루라도 좀 편하게 있고 싶었다고."(최남이 할머니)하지만 폭염이 계속됐고 설상가상으로 천막에 설치한 에어컨마저 고장나 버렸다. 결국 참다 못한 할머니들이 절단기를 들고 문을 따 경로회관에 들어간 것이었다.
송전탑 건설 3년 후... 화해 기미 없이 파괴된 마을 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