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바라보기
최종규
(이 이야기는 2017년 6월 8일, 7월 1일, 7월 21일, 사흘에 걸쳐 나눈 이야기를 갈무리했습니다)ㄱ. 이 멋진 책방을 꾸리는 기쁨이라면"책은 평생의 저의 친구이자 종교 같은 것입니다. 많은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책이 주는 기쁨을 알기에 책과 가까이하고 싶어 책방을 열었습니다. 아직 많은 편이 아니지만 찾아오시는 손님과 책을 매개로 맛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이전에는 제 주변의 인연들 대부분이 책과 가까이하지 않는 삶을 살기에, 그 인연들과 있으면 종종 헛헛함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이제는 찾아오시는 손님들에게 책을 소개하고, 책방을 소개하고, 책 읽는 이의 바람을 이야기하는 등, 넓은 의미에서 책의 기쁨을 대화로 나눌 수 있어서 그저 좋습니다. 책방을 꾸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ㄴ. 아름답다고 느끼는 손님을 한두 분 이야기해 주신다면?"멀리서 이 변두리 소심한 책방까지 찾아오신 최종규 작가님이 먼저겠지요. 그 때문에 저도 작가님의 책살림이 보고 싶어 남쪽까지 갔으니까요. (웃음) 마찬가지로 멀리서 이 변변하지 않은 변두리 소심한 책방까지 찾아오시는 분들 모두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물론 가까이서 찾아오시는 분들도 저에겐 소중하고 아름다운 손님들입니다.
아직 오래된 책방살림이 아니라서 인연들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뽑자면, 첫 손님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도 열악한 환경의 책방이지만, 처음엔 지금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이었는데요. 테이블도 없고 널빤지 네 장에 대충 각목을 박아 만든 책장이 유일했고, 실내장식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무념무상의 공간. 그런데도 자기 사는 동네에 책방이 생겨서 너무 좋다며 해맑게 웃던, 이제 대입 수험생이 된 소녀가 아닐까 합니다. 그 수줍은 미소를 아직도 잊지 못하겠네요.
한 분을 더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저는 찾아오시는 분들과 대화를 자주 나눕니다. 그러다 어느 숙녀 분과 이야기하는 중에 사느라고 잊고 지낸 자신의 꿈을 제가 깨워 드린 일이 있었는데요. 두 눈이 촉촉이 젖어 제 곁을 떠나지 않던 그분이 생각납니다. 다시 그분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결혼을 하지 않은 분께서 수년을 짝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쓴 연서를 가지고 오셔서 저보고 훑어봐 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원고량으로 따져도 제법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쓴 글이었는데요. 그 글로 책을 만들어 사랑하는 이에게 프러포즈하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이왕에 하는 프러포즈이기도 하지만 글로서도 가치가 있으면 좋겠다며 원고를 내밀던 그 거친 손등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한두 분을 바라셨는데 하다 보니 계속 나올 것 같군요. 그럼 이쯤에서 이 부분은 접기로 하겠습니다. 책방에 찾아오시는 분들 한 사람 한 사람 제겐 각별하게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