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은 있지만 (보통 오전 9시에서 10시) 퇴근이 없다는 건 방송계에서 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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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0만 원을 받던 시절(물론 세금은 떼고 들어온다) 월세며 관리비 등 한 달에 40만 원을 내면 대충 50만 원이 남았다. 지방에서 올라온 나는 그래도 보증금 1000만 원을 올리고 월세를 7만 원 깎았다. 내가 돈을 많이 못 번다는 것을 부모님이 뻔히 아시기 때문에 보증금을 보태주셨다.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지만 월세를 아끼기 위해 경기권에서 편도 2시간 이상 출퇴근하는 막내 작가, 룸메이트와 사는 막내 작가(지금은 내가 그렇게 되었다), 비좁은 고시원에서 나와 비슷한 돈을 내고 잠만 자고 나오는 막내 작가도 있었다. 집에서 회사까지의 교통비를 약 10만 원이라고 한다면 이제 남은 돈은 40만 원이다. 서울에서 살 수 있는 최소 생활비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고작 남은 게 이거다.
사실 밥값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내가 다녔던 회사들은 기본으로(인간적으로) 밥은 줬기 때문이다. 점심, 저녁 밥값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야근까지 하기 때문에 저녁밥도 먹는다)
하지만 사람마다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 가령 누군가는 담배를 끊을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면서 출근했는데 그 비용이 10만 원 정도 들었다.
막내에게는 엄청난 사치이지만 매일 아침 커피가 아니면 잠을 깰 수가 없었다.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출근하는 막내는 나밖에 없었다. 사실 '매일 커피 들고 출근하는 막내는 네가 처음'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옷을 사거나 화장품을 사면서 스트레스를 풀 때도 있었다. 요즘말로 하면 '시발비용'이다. 탕진할 만큼 많이 쓴 것도 아닌데, 이러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까지 모아놓은 돈이 거의 없다. 이렇게 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어쩌다 큰돈이 생기면 잘 아껴뒀다가 좋은 계절이 되면 여행을 떠났다. 여기서 큰돈이란, 회식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받은 보험금 같은 것들이다. 2년 넘게 일했지만 결혼 자금이니 뭐니, 목돈을 모으는 것은 나에게는 멀기만 한 얘기이다.
누군가는 남아있는 그 몇십만 원을 열심히 저축했을 수도 있다. 사실 일 하느라 돈 쓸 시간이 없기도 하다. 또 누군가는 그 돈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았을 수도 있다. 각자 그 남아있는 몇십만 원으로 자신만의 한 달을 꾸려나갔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덧대며 일했다. 아이템 서치부터 자료조사, 인물과 장소섭외, 촬영스케줄 조정, 보도자료 작성까지. 사람들이 보는 몇십 분, 혹은 한 시간짜리 방송의 밑바탕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막내작가가 있다. 이들이 받는 월급은 아직도 100만 원~130만 원 정도다.(외주제작사 기준/KBS구성작가협의회 홈페이지 구인글 참고. 급여가 적혀있지 않은 편이 더 많다) 최저임금을 따져보기조차 힘들다. 본인이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작사는 제작비가 오르지 않아 힘들다고 말한다. 다양한 콘텐츠가 흘러넘치는 시대,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점점 많아지고, 보는 눈도 까다로워지니 완성된 방송의 질은 좋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제작사의 입장을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제작비를 결정하는 본사는, 제작사의 사정도 들어주지 않는 본사는 어떨까. 2018년 최저임금으로 결정된 금액을, 과연 신경이나 쓸까?
막내 작가들은 최저임금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