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 마포구 지하철 공덕역 근처 경의선 공유지에서 주점 '거인포차'를 운영하는 조용분(73·서울 아현동)씨. 그는 지난 30년간 아현동 포차거리에서 '작은 거인' 이름을 내세운 포장마차를 가꿨다.
박동우
포차가 문을 닫기 두 달 전이었다. 조씨가 운영하던 '작은 거인' 포차를 찾은 웬 손님이 술을 잔뜩 마시곤 진상을 부렸단다. 당시 포차에 있던 지킴이 황경하씨가 기억을 더듬어가며 말했다.
"나이를 스물셋 정도 먹은 애가 하는 행동이 도가 지나친 것 같아서 밖으로 끌고 나왔어요. 이야기를 나누는데 펑펑 울더라구요. 걔네 엄마 아빠가 부동산 중개업을 했어요. '왜 우냐'고 물으니까 '철거 집행당하기 직전'이라면서 '못 이긴다'고 말했어요. 여기(아현동 포차거리)가 없어질 거란 걸 너무나 잘 안 거에요."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도시 전역에 재개발의 씨앗을 뿌렸다. 2005년 서울시가 아현동 일대를 '아현3 주택재개발정비구역(아현뉴타운)'으로 지정한 게다. 우여곡절 끝에 3800가구 규모의 래미안푸르지오아파트가 완공됐다. 2014년 9월부터 본격 입주가 시작됐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포장마차를 곱게 보지 않았다. ▲ 학생 안전 위협 ▲ 학생 및 차량 통행 불편 ▲ 교육환경 저해 ▲ 미관상 문제 발생 등을 거론하며 마포구를 상대로 민원을 제기했다. 할머니들은 행여나 주민들에게 책잡힐까 걱정했다.
전씨가 책임지고 가게 앞에 놨던 평상과 가스통을 치웠다. 점포당 100만 원의 비용을 들여 주변 환경을 정비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2016년 1월 주민들은 집회를 열어 포차거리를 치워 달라 외치는 목소리를 높였다.
마포구청이 철거의 불꽃을 피울 즈음 기름을 부은 이는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낸 공약집에서 '명품 주거 인프라 구축'을 약속했다. 그 약속의 일환이 "아현초 일대 포장마차 정비를 마무리"하겠다는 거였다.
당시 노웅래 의원은 3선에 도전했다. 전씨는 아현시장 입구에서 유세를 펼치던 노 의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저 포장마차는 어떻게 할 거냐"고. 전씨의 말이다.
"그렇게 물어보니까 '당연히 철거해야죠'라고 단호하게 말했던 사람이에요. 내가 포장마차 주인인 줄 몰랐던 거에요. 그 사람은 표밭을 일구기 위해 그렇게 공약을 건 사람이라고 봐요."사실 행정당국에서 '불법' 운운한 건 자가당착이나 다름없다는 게 할머니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쓰레기 적치장을 없앤 구청은 1993년 두 줄로 들어선 노점상을 한 줄로 정비했다. 이때부터 포차 할머니들은 매년 도로사용료를 구청에 냈다.
나중에 '도로점용변상금'으로 용어만 바뀌었을 뿐 사실상 임대료와 유사한 명목이었다는 게다. 특히 전씨는 "2006년부터 본격적인 재개발에 들어갔는데, 8년이란 기간 동안 구청은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우리가 정말 '불법'을 저질렀다면, 그간 이를 용인한 구청은 공범이 되는 셈"이라 지적했다.
구청은 2016년 1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자진퇴거 명령을 내렸다. 그해 7월 1일 구청은 행정대집행을 시도했다. 포차 10곳의 문짝을 뗐다. 소동 끝에 18곳 포차 가운데 8곳이 영업을 중단하고 스스로 나갔다. 전씨와 조씨, 두 할머니는 2016년 8월18일 강제철거 당일까지 버틴 이들에 속한다.
전씨의 설명에 따르면, 구청은 포크레인 2대와 100명 이상의 철거인력 등을 동원해 행정대집행에 나섰다. 모두가 각자의 가게에 똬리를 틀고 가만히 바깥을 응시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주인장 가운데 최고령자이던 87세 할머니는 들것에 실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