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사건의 핵심인물관계도
박종현
서울중앙지검 윤석열 수사팀은 그해 6월 1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식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8대 대선 선거사범 공소시효를 닷새 앞두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인정하지 않는 청와대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처벌하려는 수사팀의 '고집'을 꺾지 못한 것으로 풀이됐다.
윤석열팀이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대선에 개입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보고한 5월 23일 이후부터는 청와대 주변에서 "박근혜 정부의 임명장을 받은 검찰총장이 조직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흘러나왔다.
6월 11일에는 "원세훈의 선거 개입이 명확한데도 황교안 법무장관이 (선거법 적용을 하지말라고)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윤석열 팀장의 폭로가 터져 나왔다. 발언 당사자와 검찰 수뇌부 모두 "발언 취지가 와전됐다"고 해명했지만, 이 상황에서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황교안 장관의 '외압'을 인정하는 꼴이 됐다.
여론은 '원세훈 선거법 기소'로 흘러갔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유죄가 나온다는 것은 곧 박근혜 정부가 권력의 불법적인 개입으로 선거에 이겼다는 의미가 된다. 검찰 기소를 막지 못한 것에 청와대와 법무부 모두 난감해졌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고, 남은 것은 재판 그리고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검찰 수장의 '처리'였다. 권력 핵심부의 뜻을 거슬러 원세훈으로부터 유죄를 받아내려는 윤석열팀의 기를 꺾어놓기 위해서라도 외압의 '바람막이' 역할을 한 채동욱 총장의 퇴진은 불가피했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많은 이들이 <조선일보>의 '채동욱 혼외자' 보도에 "왜 하필 지금..."이라고 느낀 이유였다. 채 총장은 처음에는 부인하고 진위 공방을 벌이다가 법무부의 감찰 지시가 떨어지자 결국 사표를 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조선일보>의 첫 보도 경위에 관심이 쏠렸다. 고위공직자의 사생활은 민사소송으로 비화되거나 가족사를 잘 아는 취재원이 확보되지 않으면 기사로 쓰기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이다.
<조선> 혼외자 보도 석달 전, 청와대-국정원 채동욱 혼외자 정보 수집검찰 수사 결과, <조선일보> 기사가 나오기 석 달 전에 청와대와 국정원이 채동욱 혼외자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 정황이 드러났다. 사건의 장본인은 조오영 전 청와대 행정관과 조이제 전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 송주원 국정원 서초구 정보관(아래 호칭 생략).
'채동욱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1심과 2심 판결문에 따르면, 조이제 국장은 6월 11일 오후 송주원(국정원) 정보관과 조오영(청와대) 행정관에게 각각 채동욱 총장의 아들로 추정되는 초등학생의 개인정보를 확인해줬다.
송주원 정보관은 이미 6월 7일 오후 서울 강남교육지원청 유아무개 교육장에게 모 초등학교 5학년 채군의 개인정보 조회를 요청한 상태였다.
유 교육장의 부탁을 받은 해당학교 교장은 6월 10일 오전 채군을 교장실로 불러 아버지가 집에 자주 오는지, 신상카드에 적힌 대로 아버지 직업이 과학자가 맞는지 등을 캐물은 뒤 면담 결과를 유 교육장에게 알려줬다.
유 교육장은 송주원 정보관에게 "채군의 아버지가 과학자라고 하고 이름은 검찰총장과 같은데 동명이인인지는 모르겠다"고 알려줬다. 교장은 하교 무렵 채군을 교장실로 다시 불러 "내가 아빠에 대해 물어본 것을 엄마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채군은 어머니에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알려줬다.
송주원 정보관은 유 교육장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다음날 조이제 전 국장에게 '확인' 작업을 의뢰고, 조 전 국장은 행정지원국 산하의 OK민원센터 가족관계등록팀장을 시켜 채군이 혼외자임을 재확인했다.
서초구청 간부가 국정원·청와대 '불법' 요구에 선선히 응한 이유서초구청 간부였던 조이제 국장은 같은 날(6월 11일) 오후 같은 정보를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조오영 행정관에게도 넘겼다. 청와대 시설을 주로 관리하는 총무비서관실 직원이 검찰총장 뒷조사를 한 배경에 궁금증이 증폭됐지만, 그는 행안부 국장이나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비서관 등을 배후로 지목했다.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들의 무관함이 드러나며 조오영이 '진짜 배후'를 감출 시간을 벌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