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동 주민센터 축대에 그려진 벽화 이곳에 옛날 서원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종헌
서영보의 '유자하동기'는 신림동의 강태사서원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오늘날 이 서원은 사라지고 없다. 서원이 언제, 어떻게 사라졌으며 심지어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그나마 서원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남아 있어 이곳이 옛날 서원이 있었던 곳임을 짐작케 할 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민센터를 찾아가 보았으나 역시나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민센터 담장에는 충현서원이라 편액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찾아볼 길이 없었다.
주민센터를 나와 도림천을 거슬러 서울대 쪽으로 가다보니 신림2교에서부터 도림천의 방향이 거의 직각으로 꺾여 남쪽을 향해 있다. 도림천은 다시 미림여고 입구 교차로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물줄기를 거슬러 계속 올라가다보면 서울대학교가 나오고 서울대학교 정문으로부터 자하연, 버들골 쪽으로 이어진 골짜기가 곧 서영보의 <유자하동기>의 무대가 된 자하동이다. 안타깝게도 이 골짜기는 현재 지하에 묻힌 채 사라지고 없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를 피해 신림 2교 다리 밑으로 들어갔다. 다리 밑에는 이미 무더위를 피해 집을 나온 어르신들로 가득하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한낮에 배낭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다리 밑으로 들어서는 가여운 중생을 위해 누가 자리라도 좀 양보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에는 얼굴이 너무 젊어보였나 보다.
염치 불구하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더울 때는 무조건 다리 밑으로 가라던 옛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겠다. 바깥세상과 달리 서늘한 데다 이따금 산들바람까지 불어대니 여름 피서지로 이만한 곳을 또 어디 가서 찾으랴?
시원한 물소리를 안주삼아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서영보의 '유자하동기'를 다시 꺼내들었다.
강태사서원 앞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다시 근원을 좇아 동쪽으로 수 리를 가니 작은 봉우리가 은은하게 수풀 위로 솟은 것이 보인다. 국사봉이다.
도림천의 물줄기가 이곳 신림2교에서 남쪽으로 꺾이고 다시 미림여고 입구 교차로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서울대학 쪽으로 연결되니 강태사서원이 이곳 신림2교 근처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더구나 자하 신위가 쓴 '시흥잡시 이십 수' 중의 19수를 보면 사당의 위치가 좀 더 명확해진다. 다시 자하의 시를 펼쳐 든다.
동구 밖에 나서니 땅이 평평한데산 아래로 단청한 건물이 보이네옛 사람이 서원을 남겨놓아 지나가는 나그네 고을의 어진 선비 참배하네물가 모래밭엔 누런 갈대 하늘거리고늙은 잣나무는 푸른 안개 머금었네태사의 영령은 아직 지하에 계시는지?문곡성이 하늘에서 빛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