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7월20일, 지학순 주교(가운데 꽃다발 쓴 이)와 김지하 시인(지 주교 오른쪽)이 환영인파와 함께 원동성당을 향해 가두행진 중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지학순 주교가 원주교구 원동성당에 부임한 이래, 원주 가톨릭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내적으로는 가톨릭센터와 원주문화방송을 설립해 지역의 문화운동을 활성화했고, 외적으로는 원주와 가톨릭이 민주화운동의 중심으로 서는 계기가 됐다.
70년대 들어서, 지학순 주교는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위원회, 가톨릭 노동청년회, 여성연합회, 정의평회위원회를 이끌며 인권운동, 사회운동을 전개했다. 71년 원동성당에서 사회정의 구현과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열어, 교단 차원의 사회 규탄을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은 박정희정권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지학순 주교가 지속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부당성을 비판하기에 이르자, 중앙정보부는 지학순 주교가 해외순방에서 돌아오자 곧바로 공항에서 체포했다.
석방된 지학순 주교가 곧바로 74년 7월 23일, 원동성당에서 내외신 기자를 불러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니, 바로 '원주선언'이다. 이에 정부는 지학순 주교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하고, 10월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엮어 지학순 주교를 투옥시켰다.
이에 가톨릭 교단 차원에서 사제 300여 명이 원주에 모여, 정부를 규탄하고 지학순 주교 석방을 요구했는데, 이는 당시 한국 가톨릭 사제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인원이었다. 이때 모인 사제들을 중심으로 그 해 9월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된다.
이후로도 원동성당은 정권에 탄압받는 민주인사들의 은신처로 역할을 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 미사를 비롯해 박종철 추모 미사, 인권회복 고문반대 미사 등이 원동성당에 거행되기도 했다.
2017년, 원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