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진관 전경
정만진
"방진(方震, 1514∼?)은 충무공 이순신의 장인으로 조선 시대 보성 군수를 지냈다. 그에게는 부인 홍씨와 딸, 아들 숙주(淑周, 1564∼?)가 있었다. 방진은 활을 잘 쏘기로 이름이 높아 역대 명궁에 올랐다. 특별히 조선 시대 선조 대에 명궁사들이 많아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이름을 남겼다.어린 시절을 보성에서 보낸 방씨 부인은 두 살 위의 이순신과 1565년에 혼인하였고, 영특하기가 남달랐으며, 전쟁에 나간 이순신을 내조하여 집안을 돌보았다. 이순신이 전사한 후 방씨 부인은 정경부인의 품계에 이르고 80세를 누렸다. 2015년 보성군은 한국 여성상의 표상인 방씨 부인과 그의 아버지 방진의 뜻을 기리어, 보성 군민의 자긍심과 지역의 정체성을 드높이고자 역사교육의 장 방진관을 개관하였다."안내판을 읽고 나니 이 집 담에 이순신 기록화들이 벽화 형태로 게시되어 있는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방진이 이순신의 장인이라는 점을 기려 담장에 임진왜란의 역사를 그려 넣은 것이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뜰 왼쪽에 과녁판이 보인다. 좁은 마당에 과녁을 세워 둔 것은 방진이 당대의 명궁이었다는 점을 답사자들에게 상기시키려는 장치이다.
당대 명궁으로 유명했던 이순신의 장인
열선루 |
열선루는 이순신이 1597년 8월 15일 칠천량 대패 후 수군을 해체하라는 조정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습니다(今臣戰船尙有十二).' 하고 장계를 썼던 유적이다. 원래 보성읍성 객관 북쪽(현재 초등학교 위치)에 있었으나 1597년 8월 20일 무렵 일본군에 의해 불탔다. 열선루는 2018년 군청 앞 신흥 동산 정상부에 중건될 예정이다. 보성 일원을 사방으로 훤히 내려볼 수 있는 위치에 열선루가 중건되면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사여행지가 나라 안에 한 곳 늘어나고, 보성군은 훌륭한 관광자원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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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으로 들어서면 군수 관사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라는 느낌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 깔끔하게 정돈된 전시장이 나타난다. 거실로 사용되었던 가운데 공간에는 이순신 영정, 열선루 복원도, 이순신 연표 등이 걸려 있다.
그림이 흔히 보아온 충무공 영정과 달라 처음에는 방진 초상인가 여겨지지만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이순신이다. 현재 나라 곳곳에 걸려 있는 '이순신 표준 영정(1973년 지정)'이 친일파 화가의 작품이라는 논란을 생각하면 방진관의 이순신 전신도(全身圖) 전시는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의 올곧은 조치로 여겨진다.
게다가 이렇게 가까이서 장군의 초상을 본 적도 없다. 이곳의 이순신 영정은 순천 충무사 사당의 것이다. 친일파 화가의 작품이 아닌 충무공 영정을 보게 되었다는 반가운 마음에 사로잡혀 몇 번이나 장군의 얼굴을 쳐다본다. 살아 계신다면 어찌 감히 이렇듯 눈길을 정면으로 마주칠 수 있으랴! 오늘은 그저 황홀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