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시대 소설 <홍루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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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대방의 체면을 깎았을 때, 상대방의 체면을 다시 세워주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중국사람은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보상하고, 빚을 지면 돈으로 갚고, 체면을 상하게 했으면 당연히 체면으로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고전 소설 <홍루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재산이 많은 남자가 두 명의 부인과 살면서 각각 첫째 부인, 둘째 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남자가 첫째 부인의 시녀를 셋째 부인으로 삼으려고 하자 첫째 부인이 화가 났습니다. 마침 옆에 있던 둘째 부인에게 크게 화를 냈지요. 그런데 사실 둘째 부인은 이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서 둘째 부인은 여러 사람 앞에서 체면이 깎였고, 첫째 부인은 막 바로 자신이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첫째 부인은 둘째 부인의 체면을 다시 세워주기 위해, 둘째 부인의 동생에게 '내가 요즘 노망이 나서 자꾸 말실수를 한다'고 슬쩍 돌려 말합니다. 그리고 둘째 부인의 아들에게 '내가 조금 전에 너의 어머니한테 화낼 때, 너는 어머니가 이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라며, 둘째 부인 아들을 질책합니다.
첫째 부인은 둘째 부인의 동생과 아들을 이용해 둘째 부인의 체면도 세워주면서 자신의 체면도 지켰습니다. 첫째 부인이 둘째 부인에게 직접 사과의 말을 했다면, 첫째 부인은 자신의 체면을 지키지 못했을 겁니다.
중국에서는 이 이야기를 사자성어로 '지상매괴(指桑駡槐)'라고 합니다. <삼십육계>는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서른여섯 가지 계책을 쓴 중국 책입니다. '지상매괴'는 <삼십육계> 중 28번째 계책입니다. '지상매괴'는 '뽕나무를 가리키며 회나무를 욕한다'는 뜻인데, 상대방을 직접 비난하기 곤란할 경우, 제3자를 욕하는 척하며 간접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한다는 의미입니다.
중국 청나라 시대 소설가 조설근은 소설 <홍루몽>에서 자신이 직접 상대방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경우, 제3자를 야단치는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사과의 뜻을 전해 자신의 체면을 깎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는 계책으로 사장성어 '지상매괴'를 이용했습니다.
중국에서 체면은 실제와 관계 없습니다실제와 전혀 관계없이 외부로 보이는 체면만 세우는 모습을 살펴봅시다.
1873년 청나라 동치 황제 이야기입니다. 동치 황제가 국가 의식을 거행하면서 유럽 각국 사절을 초대합니다. 이때 청나라는 이미 종이호랑이로 전락해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럽 사절에게 황제를 만날 때. 무릎을 꿇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세 번 절하라고 말할 처지가 아니었지요.
청나라 신하들은 유럽 사절이 '삼배구고두례'를 하지 않으면 황제의 체면이 깎이고, 그렇다고 유럽 사절에게 강제로 시킬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지요.
다행히 이때 '우커뚜'라는 유능한 신하가 등장합니다. 그는 황제에게 유럽 사절은 개돼지와 같은 짐승이기 때문에, 짐승에게 '삼배구고두례' 예를 받으면 황제도 결국 짐승이 된다며, 유럽 사절이 '삼배구고두례'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황제는 국가 의식을 진행하면서 중국 신하에게만 '삼배구고두례'를 시키고, 서양 사절에게는 모자를 벗고 간단하게 묵례하는 짐승의 인사를 하라고 합니다.
어쨌든 동치 황제는 주변 사람에게 황제의 체면을 지킨 겁니다. 하지만 누구도 청나라 강희, 옹정, 건륭 황제는 유럽 사절에게 이미 16차례나 '삼배구고두례'의 예를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청나라 서태후와 광서 황제 이야기도 있습니다. 1899년 서구열강 국가의 경제 침탈로 중국 시장이 개방돼 물가가 폭등하고 세금이 가중되자, 경제적 압박에 시달린 청나라 국민이 서구열강을 몰아내자는 의화단운동을 일으킵니다.
1900년이 되자 의화단은 북경에 있는 서구열강 국가 공사관을 포위합니다. 서구열강 국가 공사를 추방할 힘도, 의화단을 제어할 힘도 없는 청나라 정부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 서구 열강 8개 국은 5만 명의 연합군으로 북경을 공격합니다. 다급해진 서태후는 신하와 어떻게 할지 대책방안을 논의합니다.
이때 또 유능한 신하가 등장합니다. 그는 요즘 중국 서쪽 '서안' 지방에서는 야생 동물이 민가에 내려와 피해가 크다며, 야생 동물 사냥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태후와 광서 황제는 황급히 '서안'으로 사냥을 떠납니다. 그러고 나서 막 바로 8개국 연합군이 북경 자금성을 함락하고 약탈을 시작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