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 청년의 모습을 만화주인공에 비교한 권범철 작가의 만평(한겨레)
부천국제만화축제
'당신이 좋아한 만화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또래보다 왜소하지만 언제나 당차고 포기를 모르는 명랑아 독고탁(이상무 '달려라 꼴찌' 등), 주변에서는 문제아 취급을 받지만 좋아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열정이 넘치는 강백호(이노우에 타케히코 '슬램덩크'), 수수해 보이지만 요리 실력도, 인품도 최고인 완벽남 성찬(허영만 '식객'), 찌질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기묘한 정신세계를 가진 조석(조석 '마음의 소리').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각 시대를 상징하고 당시 청춘들이 닮고 싶어 하는 모습을 담은 만화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독고탁'이 인기를 끌었던 1980년대는 3저 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으로 대표되는 높은 경제성장을 기록하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암울하고 힘들었지만 프로스포츠가 활성화되고 컬러TV가 보급되는 등 문화적으로는 부흥을 이루던 때였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캐릭터답게 독고탁은 우울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 않고 야구선수로 성공한다.
일본만화의 주인공이지만 빨간 머리의 강백호도 자본주의 황금기 속에서 자기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하던 1990년대 한국 사회분위기를 반영한다.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X세대의 모습처럼, 강백호는 학교수업에 관심은 없지만 농구, 특히 리바운드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보인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대중문화가 꽃피던 1990년대, 조던 농구화를 신고 자유롭게 골대를 향해 날아오르던 강백호는 그 시대 한국 청년들의 우상이었다.
인터넷의 시대가 활짝 열린 2000년대, 사람들은 자신만의 미니홈피, 블로그, UCC를 만들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걸 즐기는 시대에서 스스로 만들며 즐기는 시대로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다. 작품 속에서 성찬도 자신의 트럭을 몰고 전국을 누비며 식재료를 모아 자신만의 요리를 만든다. 마치 IT기술을 이용해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거나 관심사를 찾아 떠도는 디지털 유목민 시대를 보여주듯 말이다. 성찬이라는 캐릭터는 각 분야가 점점 개인화되고 전문화되던 당시 사회상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조석은 어떤 캐릭터인가. 못생기고 평범하고 흔하다. 장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특출해 보이는 것은 상황을 방관 하는 능력과 유머감각 뿐이다. 그런데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20대들의 모습이 보인다. 학교를 졸업했고, 군대를 다녀왔고, 연애를 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어딘가 어설프고 우스워 보이는 우리의 모습이 슬며시 담겨있다. 그래서 이 촌스러운 캐릭터의 어설픈 한마디가 우리에게는 촌철살인의 돌직구가 된다. 남들처럼 살아왔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지만, 행복하지 않아서 우스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다.
"흙수저론, 정유라 사건... 지금 청년들 마음 잘 표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