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사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충무공의 장검
정만진
하지만 이순신이 과거 급제 후 처음으로 근무했던 함경도 삼수의 동구비보는 아무리 충무공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찾아볼 길이 없다. 멀고 험해서가 아니다. 김성일이 「동구비보를 지나며(過童仇非堡)」에서 '골짜기가 갈라져 하늘은 틈이 생겼고, 강이 깊어 땅은 저절로 나뉘었네'라고 그 험난한 지형을 찬탄했고, 김소월 또한 「삼수갑산」에서
'삼수갑산 내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뇨오고가니 기험타 아하 물도 많고 산 첩첩이라 아하하내 고향을 도로 가자 내 고향을 내 못 가네삼수갑산 멀더라 아하 촉도지난이 예로구나 아하하 삼수갑산이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가네불귀(不歸)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아하하님 계신 곳 내 고향을 내 못 가네 내 못가네오다가다 야속타 아하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 아하하내 고향을 가고지고 오호 삼수갑산 날 가두었네불귀로다 내 몸이야 아하 삼수갑산 못 벗어난다 아하하'하고 노래한 것처럼, 새가 되어야 갈 수 있을 만큼 험악한 산맥 가운데에 숨어 있는 오지이기 때문이 아니다.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어서 그렇다. 류근삼은 「단풍」에서
'개마고원에 단풍 물들면 노고단에도 함께 물든다. 분계선 철조망 녹슬거나 말거나 삼천리 강산에 가을 물든다'라고 했지만 '지구상 유일의 분단 국가'를 사는 우리는 충무공이 첫 관직 생활을 했던 유적지 동구비보에 가볼 수가 없다. 소월은 '삼수갑산이 날 가두었네'라고 한탄했지만 우리는 '분단이 우리를 가두었네'라고 절규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분단이 가로막는 이순신 유적 답사 여행충무공은 죽음으로 지킨 강산이 이렇게 허리가 두 동강 난 채 피 흘리는 신세가 될 줄은 차마 짐작도 하지 못했으리라. 『난중일기』의 표현을 빌면 '이미 죽은 영혼이 되었으니 (후대 사람들이) 이렇듯 막심한 불충을 저지른 줄을 충무공이 어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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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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