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는 하느님의 은혜는 모두에게 임한다고 강조했다.
지유석
21세기 대한민국에 때아닌 이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주인공은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다. 임 목사는 성소수자 인권증진 향상에 앞장서 왔다. 한국 교회의 주류 보수교단이 동성애를 죄악시하며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임 목사의 존재는 특별하다.
이런 가운데 예장합동의 이단성 심사에 보수 8개 교단이 동참의사를 밝혔다. 이에 맞서 향린 공동체(강남향린교회, 들꽃향린교회, 섬돌향린교회, 향린교회)가 지난 7일 반박 기자회견을 열면서 '판'이 커지는 모양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임 목사를 지난 13일 섬돌향린교회에서 만나 최근 사태 전개 및 성소수자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물었다. 아래는 임 목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먼저 근황부터 묻고 싶다. 이단성 심사 공문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특급우편을 통해 전해졌는데, 왜 이런 공문이 왔나 의아했다. 내용은 더욱 기가 찼다. 받는 사람인 나를 배려한 흔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관료적 양식에 따라 보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받아들고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후 특별한 감정은 없다. 다만 이따금씩 분노의 감정이 인다. 그저 개인일 뿐인데 이렇게 괴롭히려 들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해서 저들이 무엇을 얻으려 할까 하는 생각도 한다."
- 이번 이단성 심사를 두고 예장합동이 교세가 위축되니까 내부개혁 목소리를 잠재우려고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심사를 '당하는' 당사자로서 예장합동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일단 이번 사태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여러 경로를 통해 오는 9월로 예정된 예장합동 총회에 이렇다 할 의제가 없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즉 쟁점이 없으니 이번 이단성 심사를 끄집어내 쟁점화하겠다는 의도란 주장이다.
두 번째는 목회자가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앞장서는 일 자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교회에서는 동성애는 극력 반대하는데, 저 목사는 왜 저런 일을 할까?'라고 묻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한편, '저 목사를 봤을 때, 교회에 만연한 반동성애 활동이 타당한가?'라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일단 사회적으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하는 중이다. 교회라고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최근 청년층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것 같지 않다. 반면 예장합동 교단의 경우 내부단속에 애를 먹고 있는 처지라고 본다. 다른 보수 교단도 비슷한 처지다. 즉 교단마다 깊은 고민을 가진 목회자들이 있고, 교단 지도부가 이들을 통제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말이다. 예장합동이 이단성 심사에 나선 데엔 이런 배경이 있다고 본다. 사회적 인식변화가 교회에 미칠 파장을 차단하고, 누군가를 본보기 삼아 내부 단속을 하려 한다는 말이다."
'이단 낙인' 발단된 퀴어성서주석, "새로 눈 뜬 계기"- 예장합동의 이단성 심사에 한국교회 8개 교단 이단대책위원장 연석회의(기감, 기성, 기침, 대신, 통합, 합동, 합신, 고신)가 동참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이들 역시 예장합동과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봐야 할까?"그렇다고 본다. 언급한 8개 교단은 반동성애 기독교대책위에 묶여 있는 단위이기도 하다. 추측인데, 예장합동이 여론 반응이 우호적이지 않으니 8개 교단을 불러 모은 것 같다."
- 이번 사태는 목사님께서 '퀴어성서주석'(Queer Bible Commentary·QBC) 번역본 발간에 참여했다는 게 빌미가 됐다. 번역 작업을 통해 혹시 내용에 문제점을 발견하지는 않았는가? "일단 내용엔 아무 문제없다. 상대적으로 내용이 무난하고, 이론에 충실한 책이다. 반동성애 진영에서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대목이 덜하다. 원래 주석서는 성서 구절에 대한 가이드와 학문적으로 뒷받침할 논거를 제시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지는데, 주석서 목적에 충실하다는 판단이다.
퀴어성서주석은 31명의 저자가 썼는데, 저마다의 관점으로 주장과 논지를 서술했다. 관건은 우리가 이 책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 것인가다. 난 '퀴어의 눈으로 성서를 읽을 때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눈뜸'이라고 해도 좋겠다. 또 주석서를 읽으며 은혜가 임한다고 느꼈다.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으니까. 그리고 퀴어성서 주석서라고 해서 퀴어에게만 필요한 책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성서말씀 자체가 퀴어들이 범접할 수 없다거나, 성서가 퀴어를 배제하는 게 아니라는 선언이라고 본다. 오히려 이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치유의 길이 열리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은 성서를 읽는 데 애를 먹는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동성애는 죄다'는 말을 끊임없이 들으니 말이다. 교회는 오랫동안 이런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니 성소수자로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죄의식의 굴레를 벗기 힘들다. 그런데 '동성애는 죄'라는 등식은 성소수자에게서 하느님의 은총을 빼앗아가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퀴어성서주석, 그리고 퀴어신학과 성소수자인권연대 등이 전하는 주된 메시지는 하나님의 은총은 그리스도인에게만 속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은총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를 부르고 계시며 성소수자도 여기에 속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퀴어성서주석은 성서 말씀을 되찾게 해주는 작업이라고 본다."
- 퀴어성서주석 번역본 발간에 참여한 계기에 대해 말해달라. "퀴어성서주석이 발행된 건 지난 2006년이었다. 이 책이 있다는 건 인지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반동성애 그룹의 전방위적 활동에 맞서 신학적 논쟁을 시작해야 하겠다는 필요성을 인식했다. 이 그룹의 활동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으니까.
그러던 중 지난 2015년에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슘 프로젝트 엮음, 한울)의 저자 한 분이 퀴어 성서 주석 번역을 제안했고, 꼭 필요한 작업이라는 판단에 따라 번역 작업에 착수했다(<하느님과 만난 동성애>는 한국 최초로 발간된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책이다 - 글쓴이).
책의 구성은 성서 7개 주요 구절에 대한 논쟁의 답을 찾는 것인데, 하느님을 만난 퀴어들의 이야기가 자세히 수록돼 있다. 번역 작업에 앞서 이를 페이스북에 공지했는데 참여 의사를 밝힌 분들이 많았다. 현재는 총 27명의 번역자가 작업을 맡고 있다. 번역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은 거리로 나가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외치는 등의 활동을 하진 못해도, 성소수자 인권 옹호와 향상에 기여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대단하다.
번역자 사이에 되도록 실수나 흠이 없도록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여유를 갖고 천천히 발간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예장합동이 나에 대해 이단성 심사를 한다 해놓고선 정작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아무래도 속도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번역자들도 여기에 공감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