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전은정
그 뒤 약 2주일 동안은 그야말로 앞이 꽉 막혔다. 자본확충 능력의 미비에 대해서는 금융위에 진상조사 요청서를 보내면 된다. 그러나 금융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자기들 잘못이 드러날 텐데 조사할 리가 만무했다.
거기다가 문재인 정부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금융위원장 후보로 관료들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금융위를 해체하기는커녕 관료의 힘을 빌어 무언가를 해 보겠다는 것이다. 아직도 꿈을 못 깨고.
무엇인가 더 확실한 것이 필요했다. 그것은 결국 법률적인 요건의 불충족 밖에 없었다. 그 외의 모든 재량적 판단의 영역은 금융위가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주장하면 그 뿐이다. 그때부터 필자는 은행법과 시행령, 감독규정 그리고 각종 별표와 별책서식까지 다 뒤졌다.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7월 4일 토론회는 박용진 의원실의 이름을 빌어 씨티은행 지점 폐쇄의 문제점을 다루는 토론회였다. 씨티은행이 그동안에 운영하던 지점 약 80%를 폐쇄하겠다고 하여 노조에서 마련한 토론회였다. 다만 이 문제를 노동의 문제로 접근하면 "경영상의 필요 때문에 해고"하겠다는 회사측 논리를 당해낼 수 없으니, 은행법 개정쪽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인가 조건을 정비하자고.
필자는 법 개정보다는 현행 은행법을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문제를 풀자고 했다. 왜냐하면 법 개정으로 가면 현재의 노동자들을 보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토론회 중에도 계속 물끄러미 은행업 인가 규정 등을 보고 있었다. 그때 또 쾅 하고 무엇인가가 머리를 때렸다. 대주주 적격성 요건이었다. 그래 맞아. 이거였어.
그때까지 필자는 케이뱅크의 주주인 우리은행이 케이뱅크의 지분 10%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금융자본이고, 우리나라 은행법은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이 아닌 한, 은행 주식을 10%까지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KB 국민은행이 카카오뱅크 주식을 10%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아무런 문제가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케이뱅크 주식 10%를 가진 우리은행은 카카오뱅크 주식 10%를 가진 국민은행과 처지가 달랐다. 우리은행은 케이뱅크의 "은행법상 대주주"이기 때문이었다. 대주주는 별도의 적격성 요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금융자본이건 산업자본이건 가리지 않고 무조건. 눈이 확 트였다.
우리은행이 충족해야 할 대주주 적격성은 은행법 시행령 <별표 2>에 규정되어 있는 4가지 조건이었다. 그 중 처음부터 눈길이 꽂힌 것은 제2호 즉 "부채비율 200% 이하"였다. 우리은행은 부채비율이 1,300%도 넘는다. 그런데 어떻게 이 조항을 통과했을까?
금융위가 이 조항은 비금융회사에만 적용된다고 "탄력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필자는 이에 반론이 있다. 그러나 너무 전문적이고, 이미 충분히 긴 글이라서 다른 기회로 넘긴다). 할 수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후퇴했다.
그 다음에 남은 조건은 제1호 조건 즉 "금융위가 정한 재무건전성 기준을 충족할 것"이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BIS 비율 8%를 넘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은행치고 이 비율을 못 넘으면 적기시정조치 대상이다. 그러고 보니 흠 잡을 곳이 없었다. 처음으로 "여기서 접어야 하나?"라는 좌절감이 들었다.
[장면 5] 2017년 7월 11일 새벽 6시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필자가 케이뱅크 추적을 거의 접었을 때 쯤이었다. 이름을 공개할 수 없는 한 지인이 2015년 7월 31일에 금융위와 금감원이 공동으로 발간한 인터넷 전문은행 인가 관련 매뉴얼을 보내 주었다(이것은 지금도 금감원 홈페이지 업무자료 중 업무해설서의 은행 편에 게시되어 있다).
거기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 부분을 보다가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위에서 말한 재무건전성 요건 중에 "금융위가 정한 기준을 충족할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업종의 평균치 이상일 것"이라는 조건이 또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맞아, 이런 조건이 있었지.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산해 보았다. 케이뱅크는 2016년 9월 30일에 은행업 본인가를 신청했다. 그때는 9월말 자료는 아직 안 나왔을 것이니 우리은행은 6월말 자료를 썼을 것이다. 2016년 6월말 현재 우리은행 BIS 비율 13.67%, 국내 평균치는? 14.3%. 미달이다!!
필자는 계산을 해 놓고도 눈앞의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몇 번을 확인해도 틀림없었다. 우리은행은 대주주 적격성을 충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드디어 잡았다고 생각했다. 혹시 몰라서 외부로 공개하기 전에 늘 까다로운 계산을 할 때면 검산을 부탁드리는 또 다른 지인에게 연락했다.
"이 계산 맞는 것이지요?""아닌데요?" 되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그럴 리가. 그 분 말이,
"'평균치 이상일 것'이라는 조건이 없는데요?" "어? 그럴 리가요. 매뉴얼에는 그런 조건이 추가로 있는데요? 제 기억에도 이 조건 있었던 것 같은데요?"그래서 시행령의 연혁을 다시 뒤졌다. 그랬더니 두둥. 인터넷은행 본인가 신청 직전인 2016년 6월말에 금융위원회가 시행령에서 이 조건을 슬그머니 삭제해 버렸던 것이다. 이유 따위는 없었다. 흐음.
그러나 케이뱅크 인가는 어쨌든 합법이다. 국무회의를 통과해야 하는 시행령까지 바꿔 주었는데 어쩌랴. 이제는 정치적 논쟁만 남을 뿐이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본인가 때야 시행령을 바꿨으니 합법이 되었지만 그것 바뀌기 이전인 예비인가 때는? 예비인가 때는 시행령이 바뀌기 전이니까 종전 규정대로 "업종 평균치 이상일 것" 조건을 충족했어야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예비인가 때 우리은행이 사용했을 숫자들을 점검했다. 케이뱅크는 2015년 10월 1일 예비인가를 신청했으니 사용한 숫자는 역시 그해 6월말 숫자였으리라. 2015년 6월말 현재 우리은행 BIS 비율 14.0%, 국내은행 평균치는? 14.09%. (예비인가 당시에 사용했던 잠정치로는 14.08%) 역시 미달이었다!!
드디어 잡았다!! 5개월의 여정에 비로소 끝이 보였다. 밖을 보니 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 다음부터 관련 자료를 부탁하고 이 사실의 진면목이 공표되는 것은 일사천리였다. 이 자리를 빌어 문제 의식을 공유해 준 김영주 의원실에 감사드린다.
케이뱅크 은행업 불법인가, 누구의 책임인가?필자는 우리은행을 탓할 생각이 없다. 팔 비틀려 끌려 들어간 것일 뿐이다. 민영화 와중에 제 코가 석자인데 어디 귀찮은 타은행 출자를 검토했겠는가(실제로 우리은행은 사업보고서에 케이뱅크 출자의 목적을 "정책적 출자"로 기술하고 있다. 끌려 들어갔다는 뜻이다).
금융스캔들만 나면 늘상 희생양이 되던 금감원도 잘못이 없다. 오히려 김영주 의원실 자료를 보면 금감원은 문제를 제기한 쪽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잘못은 금융위 탓이다. BIS 비율이 모자라면 거기서 끝이다. 외부 평가위원회 심사대상에 끼지도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밝혀진 바에 의하면 유권해석까지 해서 살려 주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시행령까지 바꿔서 문제 규정 삭제하고.
이건 누구의 탓으로도 돌릴 수 없다. 이제까지 금융위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금감원에 그 허물을 미뤄왔다.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이 문제가 될 때마다 당시 김석동 위원장은 "대주주 적격성은 금감원이 심사하는 것"이어서 금융위는 잘못이 없다고 빠져나갔다. 그런데 16일 김영주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유권해석은 금융위가 해 준 것이 확실하다. 시행령 개정 또한 금감원에 절대로 미룰 수 없는 금융위만의 문제다.
금융위가 혹시라도 억울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자기도 팔 비틀려서 이런 일을 한"경우 뿐이다(필자는 그 가능성을 높이 사지는 않지만). 그것은 검찰의 영역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건 금융위가 이 크나큰 허물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이번 사건은 관치금융 청산이 왜 금융개혁의 가장 중요한 꼭지 중의 하나인지를 잘 보여준 사례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현행 금융법 체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관료의 불법적 행위에 의해 결국 일어났기 때문이다.
금융은 법령으로 지탱되는 산업이다. 따라서 관치금융과는 상극이다. 금융을 발전시키려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금융위를 철저하게 해체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아니 오히려 관료에게 기대려 하고 있다.
17일은 새로운 금융위원장 청문회가 있는 날이다. 공청회로 시작된 케이뱅크 여정이 끝을 맺는 날이다. 케이뱅크가 끝이 날지 금융위가 끝이 날지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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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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