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차를 모는 운전기사에 상습 폭언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난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14일 서울 충정로 본사 대강당에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종근당 본사 15층 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회장은 "불미스러운 일로 사죄하는 자리에 서서 죄송하다"고 운을 뗐다고 한다.
헌데, 이어지는 문장들에서는 개별 '인간'의 언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구구절절, 한 문장 한 문장, 그간의 사과문에서 베껴온 듯한, 다시 말해 '종근당'이나 '이장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정형화된 패턴들의 반복이었다. 직접 판단해 보시길 바란다.
"저의 행동으로 상처를 받으신 분께 용서를 구한다. 머리 숙여 사죄한다.""이 모든 결과는 저의 불찰에서 비롯돼 한없이 참담한 심정이다.""따끔한 질책과 비판을 모두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깊은 성찰과 자숙의 시간을 갖겠다. 상처받으신 분을 위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또한 찾도록 하겠다.""이번 일을 통해 저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함으로써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그러면서 이 회장은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이상하다. 당사자에게 어떻게 사과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이 회장은 "직접 만나서 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형식적이고 짧은 답변만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회장이 사과한 대상은 누구인가. 피해 당사자인가, 기자들인가. 그도 아니면, 국민들인가, 종근당의 주주들인가. 그에 앞서, 피해 당사자인 운전기사의 심정은 어땠을까.
사과문을 뜯어 봤더니... '로봇이 쓴 건가'"회사에서는 저에게 접촉을 해서 회장님이 사과를 하고 뭐 그러겠다 그러니까 만나자, 만나달라 얘기를 했었지만, 저는 그게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냥 단지 이 지금 사태를 조금 묻어두고 조금 덮으려고 하는 그런 기분에 응하지 않았습니다."이날 이 회장의 사과 기자회견에 앞서 방송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해당 피해자인 운전기사는 위와 같이 말했다. 그러니까 이 회장과 종근당 사측은 피해자가 매체의 보도에 응하고, 녹취록이 공개되고, 국민들이 공분을 일으키기 전까지 피해 당사자와의 진정성 있는 접촉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운전기사들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근무하는 비서실 어린 20대 여직원들 그리고 회사 임직원들. 지금 방송에 나온 그것보다 더 심한 욕설도 있었습니다."이 운전기사는 3개월을 일했다고 했다. 또 앞서 근무한 다른 운전기사 두 명과 이 같은 이 회장이 언어폭력에 대해 동일한 상황이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일자 종근당에 근무하는 여타 직원들로부터 응원의 문자도 답지했다고 했다.
종합해 보면, 이 회장의 언어폭력이 회사 안팎에서 상습적이고 광범위하게 벌어졌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과거 여러 재벌 사주나 그의 가족들, 기업 오너들의 행태들을 상기해보자. 과연 이 회장의 이러한 폭력이 과연 운전기사에게만 행해졌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더 많은 피해자와 더 심한 사례들이 존재하는 건 아닌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은 '하나 마나 한' 사과로 일관했다. 짧은 기자회견문만 읽고 카메라 앞에서 고개만 숙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피해 당사자에 대한 언급은커녕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