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6월 27일 오후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회견을 마친뒤 환한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안중근 동상의 제작 배경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의정부시는 그동안 해당 동상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시에 의해 제작됐다'라고 밝혀왔다. 안 시장은 지난 2015년 5월 14일 의정부 예술의전당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한중 공공외교 평화포럼'(의정부시·차하얼학회 공동 주최)에서 "(2013년) 한중 정상회담 때 박근혜 대통령이 하얼빈역에서 역사의 흔적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하자 시진핑 주석이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동상 제작을 지시했다"라면서 "이에 차하얼학회가 쌍둥이 동상을 만들어 한국에 기증하자고 제안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하얼빈역에서 만난 2013년 6월 당시 보도를 살펴보면 시 주석의 안중근 동상 제작 지시에 대한 내용은 일체 없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 기념 표지석을 하얼빈역에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 협조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시 주석이 "관련 기관에 이를 잘 검토하도록 지시했다"라고 답했다는 기록은 있다.
외교부 동북아3팀 관계자는 지난 11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시 주석의 안중근 동상 제작 지시가 있었는지 파악된 게 없다, 한중 정상간의 논의에 따라 진행된 것은 안중근 기념관 개관뿐이다"라고 밝혔다.
주중 한국대사관도 같은 반응이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안중근 동상 제작과 관련해 한국과 중국 정부간 약속된 사안은 없다"라면서 "시 주석이 차하얼학회에 따로 지시했을 수 있는데, 이는 중국 국내 정치 사안이므로 외교 라인에서 확인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차하얼학회의 대표인 한핑밍(韓方明) 주석은 2016년 12월 의정부·차하얼 공공외교 평화포럼 연설에서 "차하얼학회가 의정부시 시민들에게 선물할 '대한의사 안중근' 대형 동상이 이미 완성돼 적당한 시기에 의정부 기차역 평화공원에 설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의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었다. 이와 관련해 차하얼학회에 시 주석 지시 여부를 확인하고자 문의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안중근과 관련 없는 도시 의정부, 왜 동상 유치할까"'왜 안중근 동상이 의정부시에 설치돼야 하나'라는 문제 제기도 있다. 구진영 이사는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나 왜 의정부시에서 이 사업에 적극적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의정부시가 밝힌 동상 설치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 의정부시가 경기 북부 독립운동 활동의 근거지이며 평화·통일의 중추적인 곳에 있다는 점 ▲ 한중우호관계 증진 ▲ 중국인 관광객 유치가 바로 그것.
하지만 안중근 의사 관련 단체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안중근의사숭모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해당 인물과 연결고리가 있는 곳에 동상이 세워지는데 의정부시는 안중근 의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면서 "2006년에 중국 하얼빈에 세워졌다가 열흘 만에 중국 정부에 의해 철거된 안중근 동상이 (안 의사와 관련이 없는) 2009년 부천에 세워진 것도 부천시와 하얼빈시가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 부천시는 안중근 동상을 유치하면서 동상 주변에 '안중근 공원'을 조성했다. 또한 관련 단체는 이 공원에서 매년 안중근 의사 관련 행사를 열고 있다.
한편, 의정부시가 들여온다는 안중근 동상 디자인은 그동안 차하얼학회가 여러 단체 및 기관에 기증해왔던 동상 디자인과 동일하다. 차하얼학회는 2014년 4월 안중근의사숭모회에 소형 동상(높이 40cm가량)을, 같은 해 5월에는 북경은제예술관(北京银帝艺术馆)에 소형 동상을 기증했다.
안중근 동상을 둘러싼 의정부시의 불명확한 행보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진영 이사는 "안중근 동상을 유치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의정부시가 투명하지 않은 과정으로 시민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을 추진하는 건 큰 문제다"라면서 "게다가 시진핑 주석이 동상 지시를 했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의정부 시정을 홍보하는 건 보여주기 행정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설령 안중근 동상이 설치된다고 하더라도 절차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예산만 쓰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동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