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다큐멘터리 제작자 장혜영(31)씨와 동생 장혜정(30)씨.
김예지
"동생이랑 같이 살지 않을 때는 정말 사는 게 떠다니는 것 같았어요. 멀쩡하게 사람들과 관계 맺고 있는 것 같지만 뿌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세계에 혼자 뿌리 내리면 혜정이의 세계에서 제가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서른 살 동생은 "어른이 되면"이란 말을 습관처럼 했다. 동생이 무언가를 원할 때 주변 사람들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고 둘러댔기 때문이다. 같은 집에 태어나, 고작 한 해 더 살았을 뿐인데 발 딛고 있는 공간에 따라 혜영씨와 혜정씨의 삶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언니가 NGO 단체 활동가, 영상 제작자, 프로젝트 기획자, 유튜버 등으로 활동반경을 넓혀가는 동안 동생은 통제와 순응을 강요하는 장애인 시설에 머물렀다. 한 달에 한두 번, 동생을 만나며 혜영씨는 "세계의 절반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느낌"을 받았다. 사회는 동생이 머무는 공간에 대해 철저히 침묵했다.
"동생이 18년간 시설에서 살면서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어요. 그중에 하나가 3년 전에 벌어진 일입니다. 시설에서 직접적이고 일상적인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내부 폭로가 나왔습니다. 그동안은 제가 지금처럼 동생을 케어하지 않았으니 잘 몰랐죠. 그 문제를 통해 시설 안에서의 '돌봄'이라는 게 격리, 방치, 통제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일이 터지고 곧바로 시설 생활을 정리하자고 마음 먹은 것은 아니다. 혜영씨는 한동안 학부모회장으로 활동하며 인권침해 사례를 공론화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다녔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지난 6월, 혜정씨를 서울로 데려왔다. 동생을 만날 때마다 직접 목욕시키며 몸에 새로운 상처가 생겼는지 확인하는 일도, 다음 통화 날을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 일도 더는 필요치 않다.
고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시설은 혜정씨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터전이기도 했다. 혜정씨가 시설 밖의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혜영씨는 "'동생이 그곳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고민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인간다운 삶'에 대해 재차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동생을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고유한 환경의 일부"라고 바라보며 공존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혜영씨는 동생이 '탈 시설'이라는 개념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함께 살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일부러 그녀와 동행했다. 처음엔 "새로운 시설에 가는 거냐"고 묻거나 화장실 갈 때도 일일이 허락을 맡던 혜정씨도 자연스럽게 시설 밖의 삶을 익혔다. 낯선 사람을 봐도 제법 쾌활하게 이야길 나누고, 좀 더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에겐 "할아버지 고향까지" 물어본단다.
"어느 날 뜬금없이 '나 퇴소했어'라고 말하더라고요. '퇴소가 뭐야?'라고 되물으니, '시설에서 나오는 거'라고 정확하게 뜻을 설명했어요.(웃음)"물론 시설을 나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한국 사회는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꾸려져있다. 복지 제도도 예외는 아니다. 혜영씨가 일하는 낮 시간 동안 혜정씨를 주간보호시설에 맡기기 위해선 '서울 거주 6개월 이상'이라는 자격을 갖춰야 했다. 혜정씨는 그간 경기도에 있는 장애인 거주 시설에 살았기 때문에 바로 복지 제도를 이용할 수 없었다. 당장 혜정씨에겐 혜영씨가 있었지만, 돌봐주는 가족 없이 자립을 꿈꾸는 이들에겐 아득한 일이다.
결국 혜영씨는 잠시 일손을 놓고 혜정씨 곁에 머물기로 했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두 자매의 '생존' 일기이자, '어른'이 되면 그토록 하고 싶던 일을 하나씩 이뤄가는 '성장'일기를 찍는 셈이다.
'신파' 아닌 생존 일기, 그리고 자립을 위한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