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무효소송에서 승소한 하이디스 지회 조합원 단체사진
윤지선
저는 하이디스 노동자입니다. 기술팀 소속의 생산기술 엔지니어로 액정 디스플레이 제품의 제조공정 중 Cell(셀) 공정에서 일했지요. 그곳에서 전 생산과정에서의 수율 관리와 생산설비의 가동률 관리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1990년 8월 현대전자 공채로 입사하여 2015년 3월 하이디스에서 정리해고 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시작된 현대전자의 경영악화로 2001년 분사도 되었고, 2003년 중국 자본에 M&A와 2006년 법정관리, 2008년 대만 PVI에 M&A와 2015년 공장폐쇄, 정리해고 되는 과정을 겪어야만 했지요.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이 과정에서 회사와 노동자는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2003년 하이디스를 인수했던 BOE가 4천여 건의 기술을 빼내 세계 굴지의 디스플레이 회사가 되는 동안, 하이디스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천여 명에 달했던 하이디스 노동자수는 반 토막이 났습니다. 대만 E-Ink가 약속한 투자 없이 특허 수익만 챙기고 생산 물량을 빼돌리는 동안, 하이디스는 휴무와 희망퇴직으로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 때 저는 많은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사를 떠나는 동료들과 송별식 자리에서 그간 '고생 많았다', '잘 될 것이다', '힘내서 파이팅하면 잘 될 것이다'라는 장밋빛 덕담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갓 입사했던 막내, 경력사원으로 입사하여 동생처럼 잘 대해 주었던 형님들, 한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활하는 친구들, 동생들 잘 지켜달라며 눈물로 부탁했던 친구. 구조조정의 모진 풍파 속에서 나에게서 멀어져 간 소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런 제가, 투쟁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날벼락 같은 공장폐쇄, 정리해고 통보... 회사에서 제시한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지점에서 수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고민 중 하나가 친기업 성향인 박근혜 정권과의 싸움이었지요. 우리가 정권과의 싸움에서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정권이 바뀔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었고 부딪쳐 봐야만 알 수 있는 일이었기에 투쟁을 선택했습니다.
투쟁에 나선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청춘과 불혹의 세월을 보낸, 하이디스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생산 라인의 Set-up(셋업)부터 양산 과정에서의 수많은 문제점을 동료들과 함께 해결해 왔고, 2014년 하반기에는 최고 수준의 수율과 생산능력을 유지했지요. 너무 아까웠어요. 신규영업을 통해 오더만 충분히 확보한다면 얼마든지 경쟁력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디를 만져도 제 청춘의 땀이 묻어나오는 회사였기에, 투쟁을 통해 공장폐쇄를 철회시키고 다시 일하고 싶었습니다. 하이디스 공장 담벼락의 한 점 얼룩에조차 제 인생이 담겨 있습니다.
2015년 3월 정리해고 이후 지금까지 대만 대표부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만정부와 한국정부와 사측을 변론하는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이런저런 투쟁을 이어나갔습니다.
투쟁 과정에서 여러 좋은 사람도 만났습니다. 대만원정투쟁에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으로, 전국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동지들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겨울 이들과 함께 광화문 촛불과 고공 농성 투쟁도 함께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