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중 사진촬영에 임하는 원용환 대표
이생곤
열정페이 서울생활... 그러나 좌절바리깡 악력으로 다져진 용환의 손에 거쳐간 수천 명의 군인들, 군 제대후 제대로된 미용실에서 경험만 조금 하면 바로 저너머에 그의 이름으로 된 미용실이 보였다.
"군 복무 기간중에 미용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했어요. '지방 보다는 헤어디자인 기술이 좀더 앞서 있는 서울이 낫겠지?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고라는 '박준 헤어디자이너 본점' 에서 일을 할 수있는 기회가 있을까?' 라고 스스로 질문도 많이 했습니다. 제대하기전 여기저기 수소문끝에 박준 헤어샵 서울 신천점에서 스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합격하여 일을 하게 되었어요. 본점은 아니지만 규모면에서 결코 본점에 밀리지 않았어요."꿈에 그리던 미용실에서 일을 하게된 용환은 누구 보다 더 일찍 나왔고 누구 보다 더 늦게 퇴근을 했다. 디자이너가 컷트를 마치면 기다렸듯이 스펀지로 손님 얼굴 닦아주고, 빗자루로 머리카락을 쓸고, 손님 샴푸 해주고, 월급은 60여만 원에 불과 했지만 용환에게 열정페이는 당연했다.
두어달 지난 시점부터는 가위질을 할 수있는 행운도 주어졌지만 곧 좌절의 연속이었다.
군대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두려움들이 엄습해왔다. 군대에서의 깍새 생활은 그 누구도 뭐할 할 수 있는 자격증 보유자 였지만, 지금 그가 있는 곳은 국내 최고의 헤어디자이너들이 활동하고 있는 미용실이 아니던가.
"처음엔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들 위주의 단순한 커트 부터 시작합니다. 문제는 디자이너들이 제가 하고 있는 커트를 유심히 살펴 보고 잘 못한 부분을 지적하는데 아주 눈물이 쏙 빠집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갓 군대를 제대한 녀석이 한두살 많은 여자 디자이너한테 혼나서 눈물이 쏙빠지는 상황이요. 그 독설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디자이너들의 계속되는 핀잔과 모진 훈련은 용환을 더욱 위축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하루는 펌을 하는데 손이 자꾸 떨려와서 롤도 말아지지가 않고 고무줄 끼우기도 안되더라구요. 그날 엄청 혼났지요. 한 10년 욕먹을 걸 그날 다 먹은 것 같았어요(웃음). 같은날 입사를 한 친구와 술을 먹고 미용업을 계속 해야할지 고민을 했는데 그 친구가 조금만 더 버텨 보자라는 말에 2년을 더 꿋꿋이 더 버텼어요."3년여 서울에서의 미용업계 생활, 용환은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다. 모진 훈련과 핀잔은 그나마 견딜만 했는데 기술이 향상되질 않았다. '그래 나에겐 재능이 없는거야. 이 길은 내길이 아니다. 그만두자.'
부도 그리고 이벤트 업계 진출2006년 말 서울을 탈출하듯 급히 내려왔다. 하면 할 수록 헤어디자인 쪽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기도 했지만 지나간 3년을 시간 낭비했다는 자괴감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만둔다고 상의도 제대로 못하고 도망치듯 내려왔어요. 당시에는 3년을 허비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바보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허무하다고 느껴졌었는데... 한참후 뒤를 되돌아 보니 그저 하나의 추억이더라구요. 그런 귀한 경험은 돈주고 살수도 없잖아요."가족들과 상의 끝에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목재소에서 용환은 일하기로 했다. 탄탄대로를 걷고있던 아버지 사업체였지만 가급적 스스로 독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마음이 편할리는 만무했다.
"아버지와 같이 일한다는 게 되게 불편했지만 마땅히 할 꺼리가 없어 우선 목돈을 만들때 까지만 붙어있자고 스스로 다짐을 했어요. 당시 제가 했던일은 영업이었었는데 국내 도급순위 30위권 내에 있는 S건설사에 목재 납품 건을 따내기도 했습니다. 근데 망하는 것은 한순간 이더라구요. 목재를 다량으로 수입한적이 있었는데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손실은 고스란히 아버지 몫으로 남겨져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장례업에 투자한 지분도 사기를 당하셨구요."아버지 사업체가 부도나면서 용환은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모아둔 조금의 돈을 지인이 운영하는 이벤트 회사에 투자를 하면서 공동 운영을 하게 되었다.
이벤트 업계 이 길도 아니다익산에 위치한 이벤트 회사, 규모는 작았지만 재기를 하는데 규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용환의 보금자리는 군산이기 때문에 공동 투자자 보다 좀더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여기 저기 오픈하는 가게가 어디인지 알아봐야 하고 도우미들 연결시켜주고 행사용 도구 챙기고 많이 분주했다.
바쁜 것에 비해서 수입이 너무 적었다. ' 결혼을 해야하는데 이런 벌이로는 결혼은 고사하고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밥도 제대로 못사주는 것 아니야.' 돌파구가 필요했다.
"1년동안 진짜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도 돈이 모여지질 않았어요. 인건비 줄이려고 제가 직접 발품 팔아가면서 명함 뿌리고 그렇게 영업을 했구요. 아무리 바빠도 행사장 이벤트 준비도 제가 직접 하고 했는데도 주변 경쟁업체 많아서 저가 수주를 받고 그러니깐 수익이 안났어요. 더이상 버틸수가 없어서 지인형 한테 이야기 했어요. '그만 두겠다' 라고요."간절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