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 선거철 되면 캠프에 줄 서는 이유

[상아탑 별곡 ⑥] 교수의 정치참여와 학문·지식의 전문성 변천과정

등록 2017.07.04 09:40수정 2017.07.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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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전문성1] 학문·지식의 대체 불가성=전문성

어떤 분야에서건 최고의 전문성을 인정받을 때 '대체 불가성'이란 칭호를 받는다.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경지에 오른 전문성은 학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에서 교수들이야말로 오랫동안 자신의 학문에 정진하여 대체 불가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여긴다. 학문과 지식의 전문성을 교수사회에서는 최고의 덕목으로 꼽아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상아탑의 정석처럼 여겨오던 이러한 공식은 이미 균형이 깨진지 오래다. 교수사회의 학문과 지식의 전문성은 점점 이상에 머물며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푸념과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현실의 여건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시시각각으로 불어 닥치는 안팎의 구조조정 주문과 성과연봉제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대학정책에 길들여진 탓에 언젠가부터 상아탑에서 이러한 공식은 점점 왜곡되고 있다.

[교수 전문성2] 기획·순발력 겸비한 뛰어난 실무능력=전문성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권을 보장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온갖 지원사업들을 통해 대학을 평가하여 막대한 혈세를 당근과 채찍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지 수만도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이러한 다양한 지원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교수들의 기획력과 순발력을 갖춘 실무능력은 어떤 전문성보다 더 중요해졌다.

대학역량강화사업, 학술연구역량강화사업, 고교교육기여대학지원사업, 프라임사업(PRIME : 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 에이스사업(ACE : 학부교육선도대학 육성사업), 시케이사업(CK : 지방대학육성 및 대학특성화를 위한 사업), 코어사업(CORE : 대학인문역량 강화사업) 등 지원사업들은 다양하다. 모두가 대학들이 평가받아 예산(국고)을 차등적으로 지원 받거나 탈락할 경우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사업들이다.


정부의 각종 평가와 재정지원사업에 과연 누가 더 빨리 대응하여 우수한 평가와 더 많은 지원금을 받아 끝까지 살아남느냐가 관건인 현실에서 상아탑의 공식이 바뀌었다. 학문·지식의 전문성보다는 기획·순발력이 뛰어난 실무담당 능력이 전문성 영역을 위협하고 있다. '상아탑 지식은 이미 죽었다'는 볼멘소리가 높다.

[교수 전문성3] 유능한 현실·정치참여(폴리페서)=전문성


갈수록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현상 앞에서 각 대학들은 비상이다. 대학에 입학할 잠재적 수요자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니 당연히 경쟁력 없는 학부(과)는 퇴출 또는 통폐합 대상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불안해하는 사람은 학생들보다 교수들이다. 철밥통처럼 여겨왔던 대학에서 설 땅이 사라지는 위기가 현실로 다가온 때문이다.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국고지원사업의 평가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교수들이 상아탑 밖을 기웃거리는 현상이 부쩍 잦아졌다. 특히 선거철이면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된다. 이른바 폴리페서(polifessor : 정치와 교수의 합성어, 정치에 참여하는 현직 교수를 일컫는 말)가 갈수록 증가하는 이유다.

교수가 정치에 참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놓고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참여한다'고 말하는 교수는 거의 없다. 대부분 '대학을 위해서', 또는 '더 나은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전문성을 기여 또는 기부할 목적으로 참여 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발을 슬그머니 내딛는 게 교수사회의 교본처럼 통용되고 있다.

'권력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대학' 잘 보여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시장경쟁 논리를 앞세워 각종 평가와 그에 따른 차등 지원정책으로 시시각각 대학을 줄로 세우려는 교육당국과 좀 더 잘 보여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려면 대학들 간의 종속관계는 늘 긴장이 흐른다. 을의 위치에 놓인 대학들로써는 힘 있는 정치권에 의지하거나 기대려는 습속이 언제부턴가 슬며시 체질화된 듯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시발점이나 다름없는 이화여대의 '정유라 부정입학' 과정에서 보았듯이 힘 있는 권력 앞에 대학은 얼마나 무기력한지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사회뿐만 아니라 대학가에도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이 사건에 많은 교수출신 관료들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초대형 게이트에 개입된 교수는 전체 관련자의 3분의 2 가량에 달하는 수준이다. 검찰과 특별검사(특검)에 의해 구속된 이 사건 관련자 20명 가운데 8명이 교수 출신이다. 불구속 기소된 7명까지 포함하면 현직 교수 출신은 15명에 달할 정도다.

이처럼 많은 교수들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법정에 서거나 구속된 경우는 보기 드문 사례다. 역대 정부에서 교수들의 정치참여는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을 교육정책에까지 널리 표방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교수들의 정계진출은 유독 극심했다. '권력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대학'은 두 정권에서 유독 심화됐다.

특히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 대통령 정책조정수석과 교육문화수석, 문체부 장관, 문체부 차관 등에 이르기까지 국정농단의 핵심에 선 인물들이 교수출신, 즉 내로라하는 폴리페서들이란 점에서 충격과 실망이 크다.

교수들, 선거철만 되면 끊임없이 캠프에 줄 서는 이유

그 파장과 후유증은 지금까지 각 대학사회에 남아있다. 무엇보다 인구감소는 학령인구 감소로 이어져 고교 졸업자가 점점 줄어들면서 대입 정원을 위협하고 있다. 각 대학이 정원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이런 마당에 각종 국고 지원사업들은 대학을 구조조정의 경쟁에 활용할 수 있는 평가의 잣대로 악용된다. 그러나 대학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먹잇감이다. 이 먹잇감을 확보하기 위한 대학들 간 경쟁은 치열하다.

이 때문에 교수들이 권력기관이나 힘 있는 정치권에 포진해 있는 것이 대학 입장에서는 그리 나쁠 리 없다는 입장이다. 교수들의 폴리페서 진출은 상아탑 내부에서조차 '불온한 선택'이라고 비판하고 비아냥거려도 선거철만 되면 끊임없이 캠프에 줄을 서는 이유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유력 후보들 캠프에는 정책자문단을 비롯해 후보를 지지하는 폴리페서들이 줄을 이었다. 캠프에 800명에서 많게는 1000명이 몰려 '폴리페서'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른바 '권력바라기'라는 또 다른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지방대학 교수들은 대선후보 지지모임에 학생들을 동원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대학가에서는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가 당선이 된 경우 해당 교수들 간에는 '언제 부를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전화를 켜놓고 있다'는 우스개가 나오는가 하면, 낙선한 후보를 지지했던 교수들은 마치 죄인처럼 주눅 들어 지내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 빗대어 '지식인의 죽음' 또는 '대학은 죽었다'고 비판하는 교수들도 있지만 현실참여라는 미명아래 학문적 성취를 기반으로 정·관계 등 고위직 권력을 얻으려는 '정치지향 교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교수들 신분불안 최대 요인 '학생 수 감소'

실제로 <교수신문>이 지난 4월, 창간 25주년을 맞아 전국 대학 교수들 6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폴리페서에 대해 부정적인 응답이 71%를 차지했다. 그러면서 응답 교수들은 지식인으로서 교수직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절대 다수가 '정치권력과 자본'을 꼽았다. 교수사회의 폴리페서에 대한 양면성을 들춰낸 대목이다.

이밖에 대학교수가 갖춰야 할 최고 덕목으로는 '전문성'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전문성은 도덕성, 비판성, 실천성과 같은 사회참여 관련 항목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또한 응답 교수 두 명 중 한 명은 대학교수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교수신분을 위협하는 최대 요인으로는 '학생 수 감소'를 지목했다.

이 같은 결과는 <교수신문>이 창간 25주년을 맞아 온라인 여론조사기관 '마크로밀 엠브레인'과 함께 지난 4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이메일을 통해 실시한 결과다.

각설하고, 폴리페서는 학문적 성과와 전문성을 정치에 접목시켜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하지만 대학의 학문연구 풍토를 저해하고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와 상아탑의 권력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더 우세하다. 이 또한 상아탑에 쌓여 있는 고질적 적폐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폴리페서 #학생 수 감소 #국고지원사업 #권력바라기 #교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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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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