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여섯이 된 지금은 택시를 탈 때가 제일 싫다. 택시를 탔다 하면 운전기사 분들로부터 '아가씨는 남자친구 있느냐'는 질문부터, 돈 많은 남자 얼른 만나 결혼하라는 소리까지 별의 별 소리를 다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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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이야기는 정말로 무섭고 잔인한 소리다. 곱씹어 생각할수록 맨정신에 그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한 소리라고 하기에는 끔찍하고 무섭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 살면서 저런 소리를 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채 서른이 넘어가면 금방이라도 시들어 쭈그렁 할머니가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사회의 목소리를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계속해서 되풀이해 들어오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지며 결혼 적령기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데, 여자의 나이를 재단하는 우리 사회의 잣대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여자의 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서른이 넘으면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식품처럼 취급받는다'며 고충을 토로하는 남성을 아직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SKII의 #Changedestiny 캠페인 '운명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이번 SKII의 캠페인은 처음 봤을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SKII는 지난 2015년부터 'Change Destiny'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자신의 삶에 대해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변화시키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캠페인은 지금껏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때로는 여성들의 성공 스토리를, 때로는 여성들의 꿈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다.
올해 발표된 새로운 캠페인은 여성의 나이에 대한 내용으로, 아시아 여성들이 겪고 있는 나이에 대한 강박관념을 다루고 있다. SKII의 자체 조사 결과 아시아 여성 10명 중 2명만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대해 괘념치 않는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나머지 8명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대해 불편하게(uncomfortable)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다고 답했다. 이유들로는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느끼는 압박감이나 사회적 분위기, 또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는 불안감 등이 가장 대표적인 이유로 꼽혔다.
영상은 서울과 상하이, 도쿄에서 1987년 세 명의 여자아이들이 태어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태어날 때부터 여자아이들의 손목에는 무언가가 새겨져 있고, 이것은 그녀들의 '유통기한'을 의미하는 숫자들이다. 이 숫자들은 그녀들의 생년월일과 서른 살이 되는 날짜들로, 살아가는 동안 그녀들의 손목에 점점 더 선명하게 새겨진다.
그녀들은 자라면서 점차 그 숫자들을 의식하게 된다. 때로 남자아이들에게 그것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긴 소매로 숫자를 감추고, 남들이 볼까 봐 애써 손목을 가리기도 한다. 사귀는 남자친구가 그 숫자에 관심을 보이면 여자들은 숫자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사회는 여자들에게 '결혼에도 때가 있다'며 더 늦기 전에, 다시 말해 그녀들의 유통기한이 다하기 전에 결혼할 것을 끊임없이 종용한다.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때를 맞춰 결혼하는 동안 짝을 만나지 못한 여자들은 마치 뒤처지는 것 같은 조바심을 느끼고, 매 순간 움츠러든 자신들을 발견한다. 사회의 잣대로 인해 계속해서 위축되는 자신들을 발견하던 어느 날, 그녀들은 그 잣대에 당당하게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결심하는 순간 손목에 새겨진 '유통기한' 표시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제서야 여자들은 그녀들을 구속하는 실체는 그 어디에도 없으며, 생각의 변화를 통해 관념적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광고의 마지막은 'You are more than your age. Don't let others put an expiry date on you(당신은 나이로만 평가할 수 없다. 다른 이들에게 당신의 '유통기한'을 붙일 권리를 주지 말아라)'라는 문구로 끝난다.
'여성의 유통기한' 다룬 영상, 그 안에 반영된 우리의 현실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 아닌가? 나는 사실 SKII의 이 동영상을 보면서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나'의 이야기라고 느낀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SKII의 이번 캠페인 컨셉은 우리의 관념 속에만 있던 '여자 나이 서른'이라는 마지노선을 형상화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서른이 되는 날짜를 손목에 달고 태어난 여자들은 그 날짜가 되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어떻게든 그 전에 결혼해야만 한다고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주입받으며 살아간다. 때문에 영상 속에서 서울, 상하이, 도쿄에 사는 세 여자들은 그 잣대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녀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녀들 스스로다. 남을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순간 그 잣대는 사라지고 여성들은 다시금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딘다.
그러나 SKII의 이번 캠페인은 뭉클하면서도 씁쓸하다. 결국, 평생을 남의 잣대를 신경 쓰며 '유통기한'을 전전긍긍 걱정해야 했던 그녀들은 스스로 마음먹는 것 외에는 상황을 바꿀 방법이 없었다. 광고 속 그녀들은 스스로를 나이와 같은 사회적 잣대에 가두지 않겠다고 다짐함으로써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현실의 우리에게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