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 산업은행 앞에 모인 전국초등스포츠강사연합회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등 구성원들이 초등스포츠강사 사업에 대한 정규예산 삭감을 규탄하고 대량해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한 초등스포츠강사 궐기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비수도권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스포츠강사로 일했다. 스포츠 강사는 초등학교에서 체육수업 보조업무를 맡는다. 학교체육진흥법은 초등학교에서 정규 체육수업 보조 및 학교스포츠클럽을 지도하는 체육전문강사를 스포츠강사로 정의했다. 하지만 스포츠강사들은 사실상 체육수업을 전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라인스케이트부터 높이뛰기, 멀리뛰기, 음악줄넘기 등 전문적인 동작과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인 역시 초등학교의 체육수업을 도맡았다. 다만 그는 두 학교를 오갔다. 스포츠 강사는 일주일에 21시간 수업이 규정이다. 지역 초등학교 중엔 한 학년에 한 학급씩만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순회학교'라는 이름으로 두 학교 수업을 도맡기도 한다. 스포츠강사와 계약하는 당사자는 초등학교의 교장이지만 사실상 스포츠강사를 뽑고 배치하는 것은 교육청이다. 결국 두 학교를 '순회'하라는 교육청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두 학교를 오가며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재계약 불가' 통보였다. 또 다른 학교에서는 "그를 계속 고용하고 싶다"고 했지만, 두 학교를 합쳐 21시간을 수업해야 했던 그는 결국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2015년 1월 31일은 그의 마지막 출근길이었다.
"힘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어..." 일방적인 해직통보에 고인은 전국초등학교 스포츠강사 연합회를 찾았다. 그와 통화했다는 연합회 관계자는 "평소 말수가 거의 없고 조용한 분으로 알고 있는데, 한숨을 내쉬며 '좀 도와달라'고 했다"며 "너무도 절박하게 도움을 청했다"고 기억했다.
연합회는 스포츠강사를 추가로 구하는 초등학교가 없는지 동분서주하며 찾았다. 고인에게 나이 마흔이 다 되어 어렵사리 얻은 어린 아이가 있다는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합회의 노력에도 고인은 결국 재계약을 할 수 없었다. 스포츠강사를 구한다던 학교가 그의 집에서 두 시간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왕복 4시간은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연합회 차원에서도 최선을 다했지만 더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힘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추락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은 게 마지막이에요."연합회 관계자는 잠시 숨을 내쉬었다. 바로 말을 잇지 못한 그는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 고개를 젖혔다. "우리에게 힘이 있었다면, 무언가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라던 그는 "그일 이후로 가슴에 한이 서려 있다"고 말했다.
결국 계약이 만료된 고인은 건설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2월 9일, 그의 생일날 사고가 났다.
"학교가 거절하면 버려지는 존재""학교가 안 쓰겠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계약이 해지되는 거죠. 5년을 일했든 10년을 일했든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유는 만들어내기 마련이니까요. 평가점수를 낮게 줄 수도 있고, 더는 스포츠강사의 체육 수업이 필요 없다고 할 수도 있죠. 결국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그냥 쓰다 버려지는 거예요."2010년 처음 스포츠강사 일을 시작한 오아무개씨는 여느 비정규직처럼 스포츠강사 역시 '눈칫밥'을 먹고 산다고 했다. 초등학교의 교장, 교감, 체육부장 등 보통 5명의 관리자가 매년 스포츠강사의 평가 권한을 쥐고 있으니 잘 보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스포츠강사로 일하는 김아무개씨 역시 학내 주차관리, 시설관리, 교장, 교감의 이삿짐 옮기기까지 다양한 일을 해왔다고 밝혔다. 텃밭을 가꾸는 교장의 호출에 주말에 나가 제초작업을 했다는 스포츠강사도 있다.
정권 입맛에 따라 늘리고 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