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들이 밑에서 올려준 식물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이성호 씨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일 할 땐 시너에 취하고 퇴근하면 술에 취하고
이성호씨가 조선소 하청업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3년이다. 부산에서 사업을 하다가 경기가 안 좋아 부도를 맞고 살길이 막막했을 때였다. 현대중공업 정규직으로 근무하던 고향 선배가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입사를 권유했다. 그 선배는 눈썰미 있는 사람은 6개월 정도만 일해도 기술을 배워 A급 단가를 받는 숙련공이 될 수 있다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조선업이 호황이었을 때다. 오히려 그때가 지금보다 임금 단가가 나았다. 그는 배 안팎에 페인트칠을 하기 전에 그라인더로 불순물을 제거하는 도장공으로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 입사하여 일을 시작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신나 같은 화공약품을 많이 만지면서 작업하니까 질식할 거 같더라고요. 페인트 분진은 진폐증이 생길 수도 있고...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일 할 때는 시너에 취하고, 퇴근하면 술에 취해 살았습니다."그렇게 시너와 술에 취해 살던 성호씨는 1년 뒤에 용접한 부위를 그라인더로 제거하는 사상공으로 업무를 바꾸었다. 하지만, 이 일도 녹록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많이 다쳤다.
"그라인더가 무겁기도 하고, 분당 7500번을 회전하는데 조금만 잘못해도 살이 순간적으로 날아갑니다. 살도 몇 번 꿰매고 무릎이랑 다리도 많이 다쳤어요. 보호장구를 착용해도 안 다치고 작업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하지만, 산재 처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산재 신청을 하면 회사에 '찍혀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청노동자가 다치면 회사에서는 짐차로 다친 노동자를 몰래 병원에 데려갔다. 그리고 '공상처리'라는 명목으로 치료 기간 동안 임금의 70%를 주겠으니 산재 신청을 하지 말라고 했다. 공상처리를 하면 나중에 후유증이 생겨도 방법이 없다. 치료비는 업체에서 부담할 때도 있었고, 다친 노동자의 과실로 책임 전가를 하여 업체가 부담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70%의 임금마저 안 주려고 하는 업체들도 있었다.
"산재 신청을 하면 해당 업체가 계약해지를 당하거나 하는 불이익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노동자 산재를 숨기려고 하는 거죠. 산재 신청하는 노동자는 블랙리스트에 올라요. '일 못 하는 사람', '건강 이상자' 이런 식으로 올립니다. 이걸 하청노동자들이 다 아니까 신청할 엄두를 못 내는 겁니다."내가 안 죽어서 천만다행이다
성호씨는 현대중공업과 미포조선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죽는 노동자들도 많이 봤다. 물에 빠져서 죽는 사람, 높은 곳에서 일하다가 떨어져 죽는 사람. 1년에 10명 이상이 죽어 나갔다. 그중에 70~80%가 그와 같은 처지인 하청노동자였다. 그가 일하는 작업 공간 바로 옆에 있던 배가 폭발해서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는 것도 봤다.
"나쁜 생각이지만, 그땐 내가 안 죽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살아남은 거니까요. 아침에 출근할 때부터 생각해요.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겁이 나도 먹고살아야 되니까 돈 때문에 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데 알려진 산재 사고가 별로 없어요. 간단한 사고가 많고 중대형 사고가 없어야 하는데, 여기는 간단한 사고는 없고 중대형 사고가 많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고, 죽은 사람은 많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