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통보를 받은 후 학교에 부착한 대자보
윤혜진
대자보를 붙이고, 언론사에 이 사건을 알리고, 학생들과 시민단체의 지지 서명을 받고,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해도 영어과 선생님들과 교장 선생님은 결정을 돌리지 않았다. 내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감사 주체인 교육청에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학교 측에 책임을 넘겼고, 서류에 도장을 찍은 교장은 영어과 선생님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아이들과 동료 선생님들의 지지가 있었지만 2월 말 결국 나는 학교를 떠나야 했다.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넣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교육 지원청으로부터 해당 교사와 관리자들에게 주의, 경고를 하는 것으로 문제가 일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4년 동안 이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학교에 목소리를 높여 내 권리를 요구한 것에 대한 대가는 해고였고, 내 노동을 부당하게 활용해온 교사들에 대한 처벌은 주의라는 가벼운 행정처분뿐이었다.
선례를 남겨두고 싶지 않아 시작한 싸움은 결국 감사를 진행하는 장학사조차 다른 학교에서도 이런 식으로 부당운영하는 사례가 많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함에도 누구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유를 증명하는 사례가 되어버렸다. 민주적이기로 유명한 혁신 학교에서조차도 학내 비정규직 문제와 고용 형태에 따른 위계가 얼마나 만연한지에 대해 전시하는 사례로 남아버렸다.
여러 선생님들이 이렇게 될 줄 몰랐냐고 묻는다. 마치 비정규직 강사가 '주제넘게' 자기 목소리를 낼 때에는 해고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내게 그냥 임용고시를 준비하라고 말한다. 비정규직의 처우 문제를 해결하는 건 개인의 노력으로 힘 있는 정규직이 되는 것밖에 없다는 것처럼. 한 선생님은 내가 비정규직 대표도 아닌데 왜 그렇게 나서냐고 날 나무랐다. 내가 겪은 개인의 문제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비정규직 분쟁과 분리된 사적인 일인 것처럼. 영어과 선생님은 내게 배후가 있고 그 배후에 의해 내가 이용되는 거라 말하기도 했다. 배후가 없으면 나는 주체적으로 결정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할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처럼.
내가 남들처럼 감내하거나 혹은 이 직장을 떠나는 식으로 문제를 마무리 짓지 않고 끝까지 복직을 요구했던 이유는 이 학교에서 4년간 선생님들과 아이들 안에서 배운 가치를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실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록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되어있지만 그럼에도 날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해줬던 선생님들의 배려에 보답하는 것이 나와 그들의 같음을 강조하는 일이 아니라 다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름을 드러낸 후에 다름 속에서도 교육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의정부여중의 철학처럼 이 학교에서 배움을 통해 세운 내 자존감을 실천으로 완성하고 싶었다. 그게 날 한 명의 선생으로 따라줬던 아이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의여중 안에서 배운 신념과 예의를 실천하기 위한 대가는 결국 해고였지만 말이다.
비정규직이 있는 한 학교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민주주의는 위계가 없는 공동체를 향한 지향이지, 존재하는 위계를 지워내는 위선이 아니다. 이는 차이와 다름을 지워 전체주의적인 집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이와 다름이 위아래로 구분된 위계로 이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고 권력을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위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만 해도 서로가 부도덕한 존재가 된 것 마냥 시선을 피하고 말을 삼간다.
보이지 않는 위계와 싸우는 것도 쉽지 않은데,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위계와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교 내에 교사와 학생 혹은 관리자와 교사라는 권력 관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학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정규직 교사 간에도 위계가 존재하며, 비정규직 간에도 아주 촘촘하게 위계가 존재한다. 이 위계는 여타 요인과 상호작용하며 순서가 변화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관리자를 정점으로 학교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하청업체를 통해 고용되어있는 숙직실 선생님까지 피라미드 형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피라미드에 따라 서로에게 다른 권리와 권한을 부여하며 자신의 신분에 맞는 행동을 한다. 이런 위계가 존재하는 한, 위계에 따라 권력이 차별적으로 분배되는 집단 내에서 학교 민주주의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위계의 존재를 일상에서 찾아내 드러내려는 노력 없이는 민주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결코,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사회적 구조는 일상에 녹아있는 위계를 무너뜨리고 발 디디고 서 있는 곳에서 민주적인 공동체를 형성해내는 일을 통해 녹이 슬기 시작한다. 민주주의가 고정된 제도나 성취해야 하는 목표점이 아니라 계속되는 지향이라는 것을, 당장은 지리멸렬하더라도 그 지향을 놓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민주시민을 키워내는 곳이 학교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해고 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