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 시대에 태어나 라디오와 흑백 TV를 거쳐 현재 스마트폰으로 문자 정도는 보낼 수 있는 어머니는 늘 한탄한다. '그저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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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저에는 자식들에게 부담 주기 싫다는 마음과 가난한 집안 살림 형편상 기를 못 펴시는 짠한 속사정이 숨어 있다. 남들이 집 장만하고 차 살 때, 우리 집은 항상 가난했다. 아버지께서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어머니 혼자 외벌이 하셨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벌만 하면 돈 받아 가는 빚쟁이와 아버지의 존재는 어머니의 노후자금을 1원도 모을 수 없게 만들었다.
자식들 교육까지 줄줄이 망쳤다는 생각에 나이가 드실수록 위축되는 마음만 남으셨다. 급기야 기존에 벌던 소득이 절반으로 줄어드니 어머니는 돈 쓰기를 아까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돈인들 안 귀할까 만은, 사람보다 귀한 게 돈이 되면 안 되는 법이다. 모으기만 하고 쓸 줄 모른다면 말년에 죽기 전에 후회할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어머니는 현재 자가로 산 집이 없고, 딸들이 과년하여 곧 시집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본인 돈과 자식들이 쓰는 돈까지 포함한 모든 쓰는 돈을 아까워하신다.
말로는 "엄마는 돈 있으면 잘 쓰는 사람이야!" 하고 호쾌하게 말씀하시지만, 실제로 돈을 팍팍 쓰는 언행일치를 보여주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적게 벌어도 셋이 버는데 본인이 버는 돈이 줄어든 이후에는 과감한 소비를 못 하신다.
맨날 만날 시장표, 잡표, 싼 것들만 사오시니 마음이 쓰리다. 어머니는 최근 1년 사이에 전직을 해서 요양원에서 일하신다. 요양원에서 어머니보다 나이 들고 병드신 어르신들을 자주 만나시다 보니 본인까지 노화를 배워 오신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엄살과 모르는 척이 늘었다.
가난한 사람은 늙는 것도 죄란 말인가 문자 보내시는 것도 할 줄 아시고, 컴퓨터도 켜고 끌 정도는 되셨는데. 이제는 컴퓨터 전원 버튼 하나 누르는 걸 겁내며 무슨 일만 생기면 딸을 소환한다.
"딸아, 이것도 해줄래? 엄마가 몰라서. 엄마가 바보라서."안 그랬던 양반이 그러면 왜 이다지도 배신감과 분노가 드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날이 나이 든 척하시는 어머니를 보면 화가 난다. 할 수 있는 것을 노력하지 않고 모든 것을 노화 탓으로 돌리며, "나이 들어서 머리가 '멍충'해졌다"라고 말하신다. 나는 이 말이 너무나 듣기 싫다.
내 눈의 어머니는 예쁘고, 똑똑하고, 뭐든 당당하고, 다 할 수 있는 분이신데. 이제 스스로 충분히 하실 수 있는 걸로 보이는 일들도 모두 딸들에게 부탁하신다.
모아둔 돈 없이, 오래 살면 자식들 앞날에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을 달고 사신다.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가 보시면 개탄하실 일이다.
어머니 한 분 정도는 충분히 모실 수 있다고 딸들은 자신하는데 어머니 눈에는 우리가 마냥 못 미더우신가 보다. 건강이 안 좋아지시기 전에 가족여행을 가자고 해도 본인이 버는 돈이 적어서 마냥 싫으시단다. 어머니의 주름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딸들의 한숨 소리가 더 빠르게 늘고 있다.
허투루 돈 쓴 적 없고 누구보다 열심히 사신 분인데 왜 늙었다고 그저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셔야 하나. 가난한 사람은 늙는 것도 죄란 말인가. 개인의 힘으로 안 되면 국가의 힘으로라도 열심히 산 사람을 도와준다면 좋을 텐데 현재의 법과 제도가 마냥 부실하게만 보인다.
그냥 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알바를 해서 투잡을 뛰든, 이 악물고 돈 많이 주는 직장으로 옮겨 가든지 하고 싶다. 그래서 어머니가 돈 걱정 덜 하시며 사고 싶은 것도 사고, 여행도 함께 가는 삶을 살고 싶다.
엄마가 죽고 싶다고 할 때마다 내가 다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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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듣기 싫은 엄마의 말 "늙으면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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