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 학부모들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앞에서 집회를 열고 "서울시 교육청의 자사고 폐지 정책을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최윤석
자사고와 외고의 설립 취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고와 입시전형이 다르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모집 시기가 앞서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낯설어했고, 심지어 자사고가 자율형사립고의 줄임말이라는 것조차 모르는 아이도 있었다. 무심함을 나무랐더니, 뉴스 볼 시간이 어디 있냐며 되레 눈을 흘겼다.
아는 거라곤, 자사고와 외고 출신들의 이른바 'SKY 대학' 진학률이 크게 높다는 사실 정도였다. 그리고 그들은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 했을 뿐만 아니라 대개 집이 부유했다는 점을 들먹였다. 지금 자사고에 다니는 친구가 있다는 한 아이는, 그가 애초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외고 아니면 자사고로 진학하겠다는 목표 의식이 확고했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자사고와 외고에 합격하기만 하면 명문대 진학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떠들어대는 친구를 보며 그땐 순진하다고 손가락질했는데, 얼마 전 그가 '예상대로' 자사고를 거쳐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랍기보다는 씁쓸했어요. 그가 자격이 없다거나 나쁜 친구여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미래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미 정해지는 것 같아 서글펐던 거죠."호기롭게 명문대 합격을 운운하던 그의 자사고 진학은 언제, 누구에 의해 결정되었을까. 과연 그는 자사고의 교육과정과 자신의 적성과 흥미 등을 따져보고 선택했을까. 뻔한 자문자답이지만, 부모의 간절한 바람을 충실히 따랐을 뿐 어린 그가 판단할 개재가 아니다. '아이는 부모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금언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이다.
일반고 아이들 무기력하게 만드는 온갖 괴담무릇 아이가 태어나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찾아 장래를 스스로 설계해가는 과정이다. 곧, 온전히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성숙한 모습을 지닐 때라야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교육의 본령이며, 가정과 학교가 마땅히 담당해야 할 몫이다.
그런데, 자녀의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부모는 스스럼없이 아이의 미래에 개입한다. 그것도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일'이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되뇌면서. 하지만 미래에 대한 판단과 선택은 부모가 대신해줄지언정 그에 따른 책임은 결국 아이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게 된다. 자신의 적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가엾은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양산된다.
자사고와 외고 폐지에 반대하는 이들은 일반고와는 비교될 수 없는 '특별한 교육과정'을 그 이유로 내세우지만, 자사고와 외고의 존재 이유는 기실 '교육과정'에 있는 게 아니라, '특별한'에 방점이 찍혀있다. 단언컨대, '특별한' 아이들이 모여 있지 않다면, 그들이 자랑하는 '교육과정'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곧, 평범한 아이들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교육과정이 결코 아니라는 이야기다.
만약 그런 아이들이 모여 있다면 일반고라 해도 자사고와 외고 못지않은 진학 실적을 낼 수 있다. 하긴 온갖 특혜로 특별한 아이들을 그러모은 일반고가 자사고와 외고 등으로 옷을 갈아입었으니 하나마나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자사고와 외고는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을 내세웠지만,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 만든 오로지 명문대 진학을 위한 교두보에 불과하다.
화려한 명문대 진학 실적을 바탕으로 자사고와 외고가 성채를 높이 쌓아 올릴수록, 일반고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온갖 조롱과 괴담이 쏟아지는 양상이다. 일반고에 다니는 아이들 중 일부는 스스로를 '찌꺼기'라며 자학하는가 하면, 자사고와 외고 아이들은 일반고와 그 아래 특성화고를 '소년원'이라며 비아냥거리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돈 있는 부모를 가진 것도 능력'이라던 어떤 이의 조롱과 정확히 겹친다.
일반고 아이들은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