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루 창립식에서 일터와 삶터의 예술공동체를 지향하는 '마루'
이명옥
희망버스는 경직된 집회문화를 바꾸었다는 평을 듣는다. 팔뚝을 흔들며 구호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시를 낭송하고 춤을 추고 자유발언을 하고 깜짝 퍼포먼스를 벌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자 하는 몸짓을 우리는 우리 안의 흥과 끼와 신명으로 풀어냈던 것이다.
이처럼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자유로운 분위기의 희망버스나 촛불집회는 어린아이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삶의 연장으로의 현실 참여를 가능하게 했다. 희망버스나 촛불집회는 축제의 현장을 보는 것 같다.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젊은 엄마나 아이를 목마를 태운 아빠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예술과 일이 노동자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공동체 삶에는 늘 신명나는 놀이판이 함께 했다. 사물놀이 농악, 난장, 탈춤, 동네 굿, 산신제, 그 모든 것이 일터와 삶터가 하나가 되는 다리 역할을 했던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시간에 맞춘 기계적인 노동을 강요당한다. 노동자들은 삶터와 일터에서 흥이나 신명을 풀어 낼 시간이 없다. 모두 함께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녹아들던 예술이, 현대에는 예술을 노동 삼는 자와 구경하는 자로 분리되었다. 우리 안에 있던 예술적 감각이나 흥과 끼는 사라졌다.
지난해 박근혜 촛불을 들었을 때 광화문 광장에는 예술인 텐트촌이 천막을 쳤다. 집회가 없을 때에서 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가 이어졌다. 시민들은 전시회, 연극, 시 낭송, 즉석 퍼포먼스에 관객으로 때론 출연자로 함께 하며 연대를 이어갔다. 추운 겨울 광화문 광장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게 만든 동력은 바로 그 예술의 힘이었다.
촛불의 간절한 바람으로 겨울 내내 우리는 하루, 하루를 새 옷을 엮어내듯 새 희망을 만들어 왔고, 결국 그렇게 엮은 새 옷의 바람을 나라에 입혔습니다.많은 예술가들이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생활인들이 저마다 무어라도 하고자 앞 다투어 예술 실천을 했습니다.
마루를 있게 한 힘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자기가 선 자리에서 언제든 노래하고 춤추고 나팔을 불 수 있는 우리이 태세를. 자기가 하고 있는 생업 때문에 무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어깨 걸면 춤이 되고, 시가 되는 우리의 위용을 짰습니다.이제 이들을 감히 막을 자는 없습니다. 전진입니다. 시대를 노래하고, 삶을 춤추게 할 것입니다. 거짓을 나팔 불어 꾸짖을 것이며, 위선을 겁벅게 할 칼날 같은 시가 되어 퍼질 것입니다. 자, 들립니까? 이 힘찬 진군의 퍼레이드가. -함께서울 공동대표 박주희 축사 중 일터와 삶터의 예공동체를 꿈꾸는 <마루>는 이렇게 태어났다. 지난 6월 23일(금) 조계사 전통문화예술 연장에서 출생 신고를 한 <마루>는 누구나 창작하고 표현하는 예공동체 회원학교와 마루 회원으로 일터와 삶터에서 자신의 흥과 끼를 마음껏 펼쳐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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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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