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알 권리' 조례 이행, 어떻게 하면 좋을까?

- 내실있는 알권리 조례 이행을 위한 제언

등록 2017.06.28 15:23수정 2017.06.2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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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건강이 사무국을 맡고 있는 알권리보장을위한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는 지난 6월 19일(월)~23일(금) '화학물질 안전관리 알 권리 조례(아래 알 권리 조례) 제정 및 시행을 촉구하는 전국 공동행동'을 진행했습니다.

참여자들은 각 지자체 앞에서 ▲알 권리 조례 제정 ▲화학물질관리위원회 즉각 구성 ▲사업장 위해관리계획서 주민 고지 등을 요구했습니다. 이미 15개의 지자체가 알 권리 조례를 제정했고, 지난해 5월에는 화학물질관리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례가 사고 이후 여론 무마용으로 급하게 만들어지다 보니,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근 발생하는 화학사고 대응과정에서 여전히 매뉴얼 부재가 문제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신범(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수원시화학사고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이 내실 있는 알 권리 조례 이행을 위한 제언을 들려주었습니다. - 기자 말

알권리보장을위한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에서 '화학물질 안전관리 알 권리 조례' 제정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조례 제정 운동은 오래된 것이 아니다. 2012년 구미 불산누출사고 이후 시작된 것일 뿐이다. 그래서 불과 얼마 전까지는 조례를 제정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열 개가 넘는 지역에서 조례를 제정했고, 환경부가 표준조례안까지 제시하는 상황이 되었다.

불과 5년 사이에 우린 태도가 달라졌다. 화학물질 좀 취급한다는 지역에 조례가 없으면 '아직도 조례가 없냐?'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는 요즈음이다. 자, 이제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지역은 달라졌나? 조례를 제정한 다음에 뭔가 화학물질로부터 더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들게 되었느냐 말이다.

조례는 제정, 이행은 잘 안 돼

그간 제정된 조례를 보면 크게 두 가지가 핵심 목적이었다. 우선 화학물질을 관리할 수 있는 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이 위원회에서 화학물질관리계획을 심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화학물질 취급정보나 사고정보를 주민 눈높이에 맞게 제공하도록 하였다. 아쉽게도 대다수의 지역에서 조례는 제정되었으나 위원회는 잘 가동되지 않고 있다. 아예 만들어지지 않은 곳도 있고, 만들긴 했지만,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논하는 도구가 되지 못하는 곳들도 많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있지 않았나 싶다. 일단 조례를 만들고, 조례가 만들어지면 그때 가서 이행을 고민해보자는 생각 말이다. 심지어 어떤 지역은 지방의회 의원이 조례제정을 요구하는 주민과 노동자들과 의논하지 않고 조례를 덜컥 제정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조례 이행을 위한 구체적 고민이 부족하게 되었고 결국 조례가 제정되기는 하였으나 이행은 되지 않는 상황에 놓인 곳이 대부분이다.

화학사고관리위원회를 수립한 수원시, 모범적으로 알 권리 조례 이행 중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서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린 또 극복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내 자신감은 수원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수원시는 2016년 초 조례를 제정했고, 2016년 12월 화학사고관리위원회를 발족했다. 난 이 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수원시에서는 조례를 제정한 후 조례이행을 위한 실무회의가 운영되었고, 이 실무회의가 화학사고관리위원회로 자연스럽게 진화하였다. 조례에 따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의논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화학사고의 위험을 진단하고 체계적인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기본계획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수원시는 기본계획을 통해 어떤 업무가 필요한지 검토하고 이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은 어느 정도인지 따져보고 있다. 이 결과를 놓고 시의회와 시장에게 결단을 요구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화학물질 담당자는 없었고, 수질 업무를 하거나 배출단속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말단 공무원에게 '사이드' 업무로 배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화학물질 업무가 공무원에게는 귀찮은 일, 더 늘어나면 곤란한 일이었다는 얘기다. 이것을 바꾸지 않으면서 지역사회가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얘기일 뿐이다.

위원회를 만들어 놓았더니 쓸모가 생긴다. 최근 수원시에서는 도금공장에서 도금폐액이 흘러나와 주변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 큰 걱정을 끼치는 일이 있었다. 수원시는 화학사고관리위원회 임시회의를 열어서 이 문제를 의논하였고, 주민 설명회를 개최하여 투명한 대응을 약속하고 추진 중이다. 이제 수원시는 조례를 참 잘 제정했고 화학사고관리위원회도 잘 만들어놓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난 수원시에서 화학물질 취급사업장이 밀집되어 있는 영통구를 순회하면서 사업장 방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결과를 가지고 영통구 화학사고대비계획을 수립할 것이다. 수원시에서는 이렇게 우리가 원했던 사고대비시스템이 갖추어져 가는 중이다.

실무회의나 TFT 구성으로 내실 있는 조례 이행 가능

조례를 만들 때부터 이행을 잘할 생각을 하면서 만들면 이행이 어려울 이유는 없다. 하지만 많은 지역이 이미 조례를 만들어놓았고 조례 이행이 안 된다며 속상해하고 있다. 이 지역들은 당장 할 일이 있다. 조례이행을 위한 실무회의나 TFT(Task Force Team)를 구성하는 것이다. 당연히 지자체와 시의회를 포함시켜서 구성해야 한다. 이 회의가 가동되는 순간 조례에서 정한 위원회를 어떻게 발족시킬 것인가, 사고대응계획은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 같은 주제들이 논의될 수밖에 없다. 수원시에서도 조례이행을 위한 실무회의가 내실 있게 운영되면서 화학사고관리위원회로 이어지게 되었다.

도움이 될만한 사이트를 하나 추천하고자 한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환경부와 함께 평택시, 인천 서구, 광주 광산구, 양산시에 대해 조례를 제정하거나 제정된 조례를 이행하는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관련 자료들이 시범사업 홈페이지에 다 올려져 있다. 간단한 회원가입만 하면 자료를 모두 볼 수 있으니, 조례 이행을 고민하는 활동가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주소는 검색창에 ccapr.kr이라고만 입력하고 엔터를 치면 된다.
덧붙이는 글 김신범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수원시화학사고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의 글입니다.
일과건강 웹진에도 실렸습니다.
#알권리 #화학물질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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