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정산 범어사 불이문입니다. 이곳에서 비움과 채움의 미학을 봅니다.
임현철
- 스님, 비움은 어떤 의미입니까?"뭐 하러 물어. 소주는 버리면 아까워 밖에 버리지 못하고 사람 몸속에 비우는 게지. <불유교경>에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함이 많기 때문에 번뇌도 많지만, 욕심이 적은 삶은 구함도 없고 하고자 함도 없기 때문에 그런 근심이 없다'고 했어."
- 스님, 어떻게 해야 비워집니까?"찻잔 속의 차 같은 것. 어떤 사람이 컴퓨터를 배우면서 매일매일 글 하나를 빠짐없이 올렸어. 그러다 보니 매이게 된 거라. '이제 그만 놔라' 했더니, '맨날 보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그만 두냐?'는 거라. 그래 그랬지. '내일은 소주병 사진 한 장 올려 놔!'라고. '소주병은 왜?'라고 묻더라고. '술 먹느라 글 못 올린다는 표시'라 했지. 또 '다음 날은 빗자루 사진 하나 올려라' 했어. '왜냐고? 청소하느라 글 못 쓴다'고."
- 스님, 왜 비워야 합니까?"자기 스스로 자기 몸을 줄(번뇌)로 옭아 묶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을 푸는 게 중요해. 자기 행동에서 비롯된 괴로움은 스스로 풀어야지. 다른 사람은 못 풀어. 이상하게 자기가 묶은 줄은 풀기도 쉬워. 그러나 다른 사람이 자기를 묶는 '타승타박(他繩他縛)'은 풀기가 더 힘들어."
- 스님, 비운다고 비워집니까?"놓는다, 비운다는 건 '응아'하는 것과 같아. 응아는 몸속 노폐물을 비우는 거지만, 바로 물질을 비우는 거여. 나를 풀어주는 거?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는 게 비우는 거야. 현실을 나에게 맞추지 말고, 기대하지 말고, 만족할 줄 아는 게 비우는 거지."
- 스님, 채움은 무엇입니까?"학자들은 이론을 붙잡고 있고. 승려들은 부처님 이론을 붙잡고 있어. 이렇듯 우리는 뭣이든 가득 채우려고 해. 갖다놓고 저장하려는 인간의 본성이야. 채우는 건 본능이야. 비워라 함은? 물은 다 차야 비로소 넘치고 비워져. 그 전에는 억지로 비우지 않으면 비울 수가 없어. 비우라는 건 다 차야 비워진다는 전제하에 가능해. 비움은 비우기 전에 먼저 채우라는 등 몇 단계가 생략된 말이야. 비움과 채움은 서로를 마주보는 거울(해탈) 같은 것이야."
초발심, 석가모니 부처님도 행하셨던 수행 '탁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