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뜨거웠다.
연합뉴스
'만일, 계엄령이 떨어진다면...' 이런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엄령이 선포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들과 향후 운동 방향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고문보다는 죽음이었다. 6월이 어느날 밤, 군인들이 학교로 들어온다는 급전에 부랴부랴 기숙사에 있던 각종 유인물들을 소각하고 그들이 학교로 진입하면 투신하려고 기숙사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다행히 군인들은 학교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내가 투신하는 일은 없었다. 훗날, 그 당시 군에 입대해 있던 후배 중 하나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학교로 진입할 준비가 다 되었고 실제로 배치도 되었는데 갑자기 취소되었어요. 하마터면 형과 거기서 만날 뻔했죠."그 당시 군대의 움직임이 어떠했는지 민간인인 나로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계엄령에 대한 불안함은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고 거리로 나서는 이들의 숫자는 점점 더 많아졌고, 넥타이부대들이 합류했으며 시민들이 모이는 곳곳마다 전두환 정권을 성토하는 시국 토론이 활기차게 벌어졌다.
6월 29일, 노태우에 의해 '속이구 선언'이 발표되다6월 29일,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가 6.29 선언을 발표한다. 그것을 전두환이 받아들일 리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전두환이 덜컥 받아버린다. 이후 알려진 일이었지만 전두환의 각본에 의해 연출된 것이었다.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도 석방되어 활발하게 국민의 지지를 얻어가며 민주화운동을 이끌었기 때문에 국민적인 지지가 상당히 높았다.
만일 직선제로 간다면 여당의 패배는 당연한 것이고, 여당의 패배는 곧 광주를 짓밟고 정권을 찬탈했던 자신들에게 결코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이전처럼 힘으로 짓누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상당히 교묘한 술법으로 정권을 연장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당시 '물태우'로 불리며, 국민에게 비아냥 거리가 되었던 노태우 민정당 대표, 그를 대통령이 되게 하려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노태우가 전두환에게 반기를 들어 6.29 선언을 하는 것처럼 하고, 전두환은 그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취함으로서 그해 있었던 12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을 누르고 노태우가 당선되는 놀라운(?)일이 현실이 되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그들의 정권연장만큼 늦어졌고, 늦어진 만큼 민주화의 의미는 퇴색됐다.
당시 대학생들은 6.29 선언이 나오자마자 '속이구 선언'이라며 반발했지만, 많은 이들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알맹이가 없는 선언에 환호했다. 12월에 당연히 문민정부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따낸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것이다.
경찰에 확인한 바 없으나, 6.29 선언 이후에 '수배'도 해제된 것 같다. 민주화운동관련한 수배자들의 수배를 해제하고, 양심수도 일정 정도 석방되는 조치들이 있었기에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그해 10월, 시위현장에서 경찰에 연행되었지만 건대사건과 관련하여 취조를 받은 바 없는 것으로 보아 내가 6.29 선언의 수혜자인 것은 확실하다.
'나이 서른에 우린'을 불렀던 이들이 중년이 된 지금소위 386세대 혹은 486세대, 6월 항쟁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 세대. 그 당시 백창우의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20대였으므로 그 노래를 자주 불렀고, 나이 서른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고자 다짐했었다. 아니 서른이 되려면 꽤나 많은 세월이 지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때에 부끄럽지 않길 바랬다.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그러나 지금은 그 나이도 훌쩍 넘어 50대 후반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많이 부끄럽다. 지금의 중년이 6.10항쟁의 주역이었던 세대가 만들어온 나라의 현실, 그것이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경쟁이 판치는 승자독식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많은 이들이 순수성을 포기하고 과거의 이력을 밑천 삼아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되었으며, 변절자들도 많이 생겼다. 그리고 나름 그당시 공부했던 사회과학적인 지식으로 중무장한채로 자신을 합리화하는데 능하고 익숙하다.
물론, 다는 아니다. 여전히 순수성을 지키는 이들이 많고, 이 나라가 좀더 사람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1987년 6월 항쟁은 여전히 미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