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평등한 가족구성권, 다양한 가족구성권,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 및 혼인신고 수리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
연합뉴스
성직자의 타락이 더 큰 죄무엇보다 성서는 동성애를 죄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성서의 기록을 살펴보자. 성서에서 동성애를 언급한 대목은 구약성서 <레위기>와 사도 바울이 로마인에게 보낸 편지(<로마서>) 정도다. <레위기> 저자는 남자와 한 자리에 드는 것을 '망측한 짓'(레위기 18장 22절)이라고 완곡하게 적는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장 27절에서 "남자와 남자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한다"고만 기록했을 뿐이다.
성서는 오히려 성직자들의 타락에 준엄한 경고를 보낸다. 구약성서 <사무엘상> 2장의 기록을 살펴보자. 여기엔 하느님께서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의 도덕적 타락에 어떤 심판을 내렸는지 자세히 적혀 있다.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은 백성들이 하느님께 바친 제물을 제 것으로 안다. 그뿐만 아니다. 성막(예배당 이전에 예배 장소로 쓰였던 천막 - 글쓴이)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있었는데, 엘리의 아들들은 이 여인들과 잠자리를 갖는다. 몇몇 개신교 목회자들이 교회 재정을 사유화하고 여성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호와는 이들의 타락에 모골이 송연한 형벌을 내린다. 엘리의 두 아들은 물론 엘리 가문 자체를 멸한 것이다. 성서에서 이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성소수자 때문에 사회가 타락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종교, 혹은 정치 지도자들의 도덕성 상실이 공동체의 붕괴를 불러온 예가 더 많았다.
예장합동 교단이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동성애로 인한 성도덕 타락'을 먼저 생각했다면, 성추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전병욱씨 사건을 엄정하게 다뤘어야 하지 않을까. 징계권을 가진 예장합동 평양노회는 전씨에게 '설교 2개월 중지, 공직 정지 2년'의 처분을 내렸다.
전씨가 삼일교회에 시무하던 당시 다수의 여성도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공식 제기됐지만, 평양노회는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법정이 전씨가 복수의 여성도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전병욱 목사가 담임목사의 지위를 이용해 장기간 다수의 여성 신도들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성추행과 성희롱을 해온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현재 전씨는 법원 판단에 불복해 대법원에 항소한 상태다.
또 지난 9년 보수정권 집권 기간 동안 세월호 유가족 등 시대의 아픔을 당한 많은 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다시피 했다. 그러나 예장합동 교단이 전면에 나서 이들을 보듬진 않았다. 이런 교단이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앞장섰던 타 교단 목사의 이단성을 심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가톨릭마저 이단이라는 예장합동 예장합동의 무리한 이단성 심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장합동은 2015년 9월 제100회 총회 당시 "총회 임원회와 정치부 임원회가 로마 가톨릭 이단성 공포 안건을 맡기로 했다"고 결의한 바 있다. 즉, 가톨릭의 이단성을 심사하겠다는 말이다. 당시 총회장에서는 '가톨릭은 이단도 아닌 이교'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종교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나 교단을 만들지 않았다. 그보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려 했다. 예수께서 세우려했던 하느님 나라는 가난한 자, 권력에 억눌린 사회적 약자, 병든 자가 주인이 되는 나라다.
따라서 당시에 천형으로 여겨졌던 한센병자나 걷지 못하는 자라도 예수에게 오는 데 문제 되지 않았다. 예수는 되려 병든 이들, 그리고 그 시대에 가장 아픔 당한 이들을 먼저 찾아갔다. 아마 지금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면, 성 정체성이나 피부색 등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예수가 전한 복음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 그게 교회의 존재 이유다. 영국 성공회 사제인 데이브 톰린슨은 자신의 책 <불량 크리스천>에서 이렇게 적었다.
"교회는 살아 숨쉬는 사랑의 공동체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곳, 평등한 기회를 주는 곳, 다양성을 기뻐하는 곳, 누구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집처럼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성소수자를 겨냥해 혐오를 여과 없이 발산하고, 이들을 돕는 목회자를 이단으로 낙인찍으려는 시도는 명백히 반그리스도적이다.
예장합동은 타 종교나 타 교단 목회자에 대해 이단 낙인을 찍으려 하기보다 자신의 발밑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내부개혁은 소홀히 하면서 이단 낙인에 매달린다면 교세 감소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다른 보수 교단 역시 마찬가지다. 성소수자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는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십계명 가운데 네 번째 계명, 즉 "네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 위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