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베이징) 시내의 한 서점에서 찍은 현대판 <사기史記>.
김종성
이처럼 직불의는 남의 공격을 받아도 적극 해명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이런 사람이 오늘날의 인사청문회에 나온다면, 억울한 비난을 들어도 제대로 해명도 않고 계속 고개만 숙여댈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직불의도, 자신이 형수와 사통한다는 말에 기가 막혔다. 그것도 황제 앞에서 그런 말을 들었으니, 더욱 더 그랬을 것이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직불의는 혼자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사기> 직불의 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형이 없는데? 무슨 말이지?"비판자는 직불의한테 형이 있는 것으로 잘못 알았을 수도 있다. 황제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한 점을 보면, 남한테 전해들은 이야기를 사실로 확신했을 수도 있다. 직불의를 낙마시키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인사검증을 부실하게 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직불의는 인격이 훌륭한 사람으로서보다는 허무맹랑한 인사검증을 받은 사람으로 더 유명해졌다. 그래서 수백 년 뒤의 조조가 직불의를 거론하며 인사검증 실태를 비판했던 것이다.
'관료된 뒤 장인을 구타한 제오륜'?직불의 사례에 이어 조조가 거론한 또 다른 사례는 제오륜(第五倫)이다. 조조의 담화문에는 제오륜이란 이름이 아니라, 관례(성인식) 때 받는 이름인 자(字)를 사용한 제오백어(第五伯魚)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제오륜은 후한 때인 서기 1세기에 활약했다.
제오륜은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고 기득권층인 왕실사돈(외척)의 전횡을 비판했다. 그래서 미움을 살만 했다. 후한 초대 황제인 광무제는 그런 이유로 그를 좋아했다. 후한 역사서인 <후한서>의 제오륜 열전에 따르면, 광무제는 그를 처음 본 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제오륜의 중용을 막으려고 광무제의 귀에다가 이상한 이야기를 흘려 넣는 신하들이 있었다. 그들의 비난 중 하나는 '제오륜은 관료가 된 뒤에도 장인어른을 구타하는 놈'이라는 것이었다. 제오륜은 패륜아라는 것이었다.
반대자들이 이런 소문을 퍼뜨린 것은 제오륜과 광무제의 접촉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광무제는 소문에 현혹되지 않고, 일단 만나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제오륜 열전에 따르면 광무제는 "내가 듣기로 자네는 관리가 된 뒤에 장인을 구타한 적이 있다던데"라고 입을 뗐다. 그러자 제오륜은 이렇게 답했다.
"신은 세 번 결혼했습니다. 세 번 다 아버지 없는 여성과 결혼했지요."제오륜의 중용을 막을 목적으로 급하게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반대파들이 기본적인 인적 사항조차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조는 제오륜 같은 사례가 자기 시대에도 생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불의에 이어 제오륜의 사례를 거론했던 것이다.
조조는, 가혹하고 불순한 인사검증은 해당 후보한테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임금과 하늘에도 죄를 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흰 것을 검다 하고, 하늘을 속이고 임금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그는 담화문에서 비판했다.
가혹하고 불순한 인사검증은, 적절한 인재와 함께 개혁이나 국정을 수행해야 할 군주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래서 조조가 그런 행위를 '하늘을 속이고 임금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한 것이다. 조조는 "이런 폐단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 치욕스럽다"고 말했다. 제발 그런 짓들 좀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게 조조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것 때문에 담화문까지 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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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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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조조를 화나게 한 '불순한 인사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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