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알바 노동자가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영화 <카트>에서 고등학생 편의점 알바로 나오는 도경수(태영 역)
영화 <카트> 스틸 컷
만능이 돼야 했던 기억들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건 막 20살이 된 당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크기가 큰 곳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찮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야외 테이블에서 술을 먹고 치우지 않고 가는 사람들, 폭언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들, 내부에서 술을 먹으면 안 된다고 아무리 말해도 고집을 피우며 술을 먹는 사람들 등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 역시 고역이었다. 편의점 알바는 다른 알바와 달리 '치안에 대한 불안'까지 겪어야 했다. 도난이나 폭행·폭언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아 '야간 아르바이트는 남자만 뽑는다'는 편의점도 많았다.
다만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알바가 해야 하는 일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었다. 현재보다 편의점이 맡았던 기능이 적었던 당시에도 큰 편의점은 여러 가지 일을 맡고 있었고, 알바는 그 모든 것들을 능숙하게 다뤄내야 했다.
그나마 나는 당시의 알바와 이후에 했던 편의점 알바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점주를 만나 그들이 어떤 일은 내게 맡기지 않기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생지를 꺼내 빵의 특성에 따라 굽거나 녹여 일일이 포장을 하고 진열을 했고 그 빵을 배달하는 일도 있었다.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토요일에는 로또를 사러 왔고, 일요일이 되면 그것을 맞추러 왔다. 환불 체제가 없는 로또의 특성상 버튼 하나를 잘못 누르면(손님이 자신이 구매하는 것을 대충 말하거나, 말하고 나서 마음을 바꾸면 늘 이런 일이 생긴다) 추가로 나온 로또는 내 돈을 주고 구매해야 했다.
사람들은 각종 세금을 납부하러 왔고, 택배를 부치러 왔다. 나는 어느 때는 세무서의 직원 같았고 어느 때는 우체국의 직원이 됐으며 5개 종류가 넘는 복권을 다루는 복권 판매소의 직원이기도 했다. 빵집 알바생이기도 했고 술집 알바생이기도 했다. 아메리카노와 라떼, 카푸치노 등을 주문에 따라 만드는 카페 알바생이기도 했다.
사람의 증세에 따라 약을 추천하는 약사이기도 했고 전화카드와 휴대폰을 판매하는 통신전문가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조금이라도 미숙하면 "알바란 애가 그것도 모르냐"라는 일갈을 들었다. 이후 온갖 아르바이트들을 했고, 그 중에는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소위 '빡센' 알바도 있었지만 당시의 편의점 알바 난이도는 그것들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일을 해야 했지만 대우나 인식은 오로지 '그냥 계산만 해주는 애' 정도에 그쳐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