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신흥동의 나가야(장옥). 인천에서 가장 긴 나가야다.
김영숙
신흥동 신흥시장 맞은편에 소양구이와 양곰탕을 파는 '골목집'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이 있다. 그 건물이 1902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부도유곽(敷島遊廓)'이라는 이름의 집창촌이다.
'부도루(敷島樓)'라는 특별 요릿집이 호황을 누리면서 아예 행정지명을 부도정(敷島町)이라 했다. 1929년에는 부도루 외에 송산루·일력루 등, 점포 9개가 성업 중이었고, 창기 수가 7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해방 이후 주요 고객이 일본인에서 미군과 연합군으로, 행정지명이 부도정에서 선화동으로 바뀌었을 뿐 부도유곽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1961년 5.16쿠데타 이후 집권한 군사정부가 사회정화차원에서 선화동 유곽을 숭의동(옐로 하우스)으로 이전시켰고, 유곽이 있던 자리에는 시장이 들어섰다.
배 부장은 "지금은 두 곳 정도만 남아있다. 이 건물은 1945년 항공사진에도 나와 있다. 80여 년 된 건물이다"라고 설명했다.
부도유곽을 지나 일본식 주택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에 이르렀다. 지붕 하나에 담을 나눠 가가호호 살고 있는 가옥형태로 줄사택이라고도, 장옥(長屋)이라고도 부르며 일본어로 나가야라고 한다. 길라잡이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붕을 보면 차이가 나게 색깔 등이 다르지만 긴 건물이 하나의 지붕과 하나의 보로 연결됐다. 장옥이라고 하는 이 주택은 신흥동에 많이 있다. 인천에 남아있는 나가야 중 이것이 가장 길다. 이것과 비슷한 게 부평의 삼릉 미쓰비시 사택이다. 미쓰비시 사택은 노동자들을 위해 지었는데, 이 나가야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아파트처럼 일반인들에게 집을 지어서 팔기 위해 지었다. 일본식 주택의 특징은, 일본이 지진이 많은 나라라 높지 않고 일자로 짓는다. 한 지붕 아래 여러 세대가 같이 산다. 이 근대건축물은 보존가치가 높다."주차장, 만들수록 더욱 모자라신포동 동방극장 터로 걸음을 옮겼다. 일제강점기 낙우관으로 시작해 1938년에는 동보영화관으로, 해방 후 1947년에는 동방극장으로 개칭한 이 극장은 애관극장과 더불어 인천 영화관의 쌍두마차였다. 특히 동방극장은 외화를 많이 상영해 1960~70년대 '대부'나 '에덴의 동쪽' 등을 봤던 세대에게 추억의 장소다.
동방극장은 연기자 최불암에게 뜻 깊은 공간이기도 하다. 최불암의 부친인 최철은 건설영화사를 설립해 인천지역 최초의 극영화인 '수우(愁雨)'를 제작했는데 개봉을 앞두고 과로로 사망했다. 동방극장에서 영화가 개봉한 날 최철의 외동아들인 최불암은 8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시사회에 참석했다. 최불암의 모친은 동방극장 지하에 음악다방을 열기도 했다.
1981년 폐관한 동방극장은 그 후 여러 상점으로 쓰이다 2015년 철거됐고, 그 자리에 주차장이 지어졌다.
배 국장은 "인천에 역사와 사연이 있는 공간들이 하나둘 허물어져갔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여지없이 주차장이 들어선다. 서울 중구와 인천 중구 중에 어디에 더 주차장이 필요할까? 서울 중구에는 주차장이 별로 없다. 왜냐면 대중교통이 발달돼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은 지으면 지을수록 더 부족하다. 더 이상 주차장을 짓기 위해 근대건축물들이 철거되는 안타까운 일이 없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세관창고 복원, 좋은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