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골마을고택
최홍대
박팽년의 손자는 세조의 서슬 퍼런 칼날을 피해 이곳에 숨어 살았다. 골기와 집이 처마를 맞대고 있는 이곳에는 박일산이 창건한 태고정(보물 제 554호), 문현(文鉉)이 1778년에 세웠다는 도곡재(무형문화재 제32호) , 중휘(重휘)가 1664년에 세웠다는 금서헌, 성수(聖洙)가 지은 것으로 삼가헌등 오래된 고택도 많지만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은 전국에 4곳만 남아 있다. 사액서원 중의 하나로, 사육신을 제향 했던 '낙빈서원' 역시 이곳에 있다. 마을 입구에는 '사육신 기념관'이 있으며, 사육신 사건 당시 이조판서의 신분으로 사육신과 함께 참화를 당한 선생의 아버지 박중림의 사당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육신 중에 직계 혈육을 남긴 인물은 박팽년이 유일하다. 천우신조로 목숨을 건진 선생의 유복손(遺腹孫) '박일산'. 바로 그가 태어나고 숨어 살았던 묘골마을은 560년 내력의 박팽년 가문의 세거지로 성장하였다.